Neuroscience Study
오래된 습관은 죽지 않는다. 본문
앞서 제1장에서 우리는 두뇌과 언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언제 변화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즉, 안정성과 유연성 간의 딜레마를 배웠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는 두뇌의 전략 중 한 가지가 밝혀지는 데는 버몬트 대학의 마크 부턴이라는 과학자의 연구가 크게 기여했다. 지난 20년 간 오래된 습관이 다시 돌아오는 이유를 밝히려고 했던 부턴은 제1장에 등장한 앤서니 디킨슨의 실험과 매우 유사한 접근법을 이용해 쥐를 연구했다. 부턴이 연구한 현상은 자발적 회복, 재개, 복귀, 부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하나같이 일찍이 배웠던 습관이 사라진 줄 알았지만 더욱 강력하게 돌아온다는 보편적인 현상을 반영한다. 이러한 '재출현 현상'은 특히나 우리가 변화시키고 싶은 대다수의 나쁜 습관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이 현상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쥐에게서 재출현을 일으키기란 상당히 쉽다. 우선 쥐에게 레버를 누르는 것처럼(이 레버를 '레버A'라고 부르자) 특정한 행동을 수행하면 먹이가 나온다고 훈련시킨다. 그런 뒤, 쥐에게 다른 행동('레버 B'를 누르도록)을 훈련시키는 동시에 기존의 행동을 '소멸'시킨다. 즉, 레버 A를 눌러도 쥐는 더 이상 보상을 받지 못한다. 쥐는 금세 레버 A를 누르는 행동을 멈추고 레버 B를 눌러야 한다는 것을 익힌다. 만약 실험자가 쥐가 레버 B를 눌러도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레버 A를 누르던 원래 습관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어느 쪽 레버를 누르든 보상이 나오지 않을 것이므로 쥐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을 터이다. 만약 레버 A를 누르는 원래의 습관이 여전히 숨어 있다면 레버 B를 누르는 행동이 사라지자마자 기존의 습관이 돌아올 것이다. 실제로 후자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레버 B를 누르는 것으로 보상을 받지 못하자 쥐는 예외 없이 레버 A를 다시 누르기 시작했다. 이는 부턴 외 여러 사람들이 연구를 통해 밝힌, 처음 학습한 행동은 어떤 상황에서도 백그라운드에서 스위치가 켜진 상태로 남아 언제든 다시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재출현 및 이에 관련한 현상을 파헤친 부턴의 연구는 오래된 습관을 새 습관으로 대체할 때 우리가 실제로 오래된 습관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과거의 행동을 '억제'함으로써 새로운 행동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공고히 하는 데 일조했다. 그는 더 나아가 이러한 억제성 학습이 기존의 습관보다 '학습된 환경'과 더욱 밀접환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 개념은 공포증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강박 장애까지 습관적인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 여러 질병의 치료법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장애를 치료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 중 하나는 노출 치료로, 환자가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에 조금씩 노촐시키는 치료법이다. 불안 장애 치료법을 연구해온 UCLA의 심리학자 미셸 크래스크는 2002년 동료들과 함께 거미 공포증이 있는 대학생을 치료한 실험을 바탕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실험 설정을 무미건조한 학술 용어로 설명했다. "무독성의 칠레 로즈 헤어 타란툴라 한 마리가 공포증 자극제가 되었다." 약 한 시간의 치료 동안 학생들은 거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서 장갑을 낀 손으로 거미를 만지고, 거미가 맨 손 위를 기어 다니도록 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굉장히 효과적인 치료법이었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세션이 끝날 때쯤에는 자신의 손 위를 거미가 돌아다니도록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다른 점이 있었다. 해당 노출 치료에는 두 가지 다른 상황이 주어졌고(장소 및 다른 세부적인 사항이 달랐고), 학생 개개인을 무작위로 둘 중 하나의 상황에 배정했다. 치료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학생들을 일주일 후 다시 불렀다. 어떤 학생들은 처음 거미에 노출되었던 상황과 같은 테스트를 진행했다. 노출 치료 일주일 후 두 집단 모두, 치료를 받기 전보다는 거미에게 공포심을 덜 느꼈지만 크래스크와 동료들은 달라진 상황이 치료의 효과를 낮추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첫 치료 때와 같은 장소에서 후속 테스트를 받은 학생들은 다른 상황에서 거미를 조우하게 된 학생들보다 공포를 덜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결과와 다른 유사한 결과들은 습관의 고착성에 대한 또 다른 단서를 제공한다. 즉, 습관 시스템이 안정성과 유연성 간의 딜레마를 해소하는 해결책은 이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추정하는 것이고, 따라서 무엇이든 특정 자극의 반응으로 처음 형성된 습관은 이 세상의 영속적인 측면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습관이 생겨나면 이것이 일종의 '디폴트 행동'이 되어 다양한 맥락에서 발현될 것이다. 또한 해당 습관을 대체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후속 학습은 학습이 형성된 상황으로만 더욱 국한될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원래의 습관이 돌아올 공산이 아주 크다는 얘기다. 이 사실은 우리가 습관을 무효화시키는 방법과 관련해 아주 중요한 암시를 준다. 특히나 다양한 맥락에서 행해질 때 노출 치료의 효과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크래스크의 그룹이 보여준 연구도 치료의 효과성 정도는 달랐지만,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었다.
러셀 폴드랙. (2022). 습관의 알고리즘 (신솔잎, 역). 서울: 비즈니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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