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roscience Study
행동의 자동화 본문
뇌에 솜씨를 새겨 넣기
신경과학자들은 특정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을 탐구함으로써 뇌 기능을 밝혀줄 단서를 얻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런 단서를 얻을 생각으로 오스틴 네이버Austin Naber를 찾아갔다. 오스틴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10세 소년이다. 그는 '컵 쌓기'라는 스포츠 종목에서 아동부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당신의 눈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유연한 동작으로 오스틴은 한 줄로 겹쳐 쌓아 놓은 플라스틱 컵들을 움직여 피라미드 3개를 만든다. 이어서 그 피라미드들을 컵 두 줄로 만든다. 그다음에는 겹쳐 쌓은 컵 두 줄을 커다란 피라미드 하나로 만들고, 이어서 원래대로 한 줄로 겹쳐 쌓는다.
이 모든 과정이 5초 만에 완결된다. 내가 해보니, 43초가 최고 기록이었다.
오스틴의 손놀림을 보노라면, 그 복잡한 동작들을 신속하게 해 내기 위해 그의 뇌가 과도하게 일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중이라는 추측이 절로 든다. 이 추측을 검증하고자 나는 그와 컵 쌓기 대결을 하면서 그의(또한 나의) 뇌 활동을 측정해보기로 했다. 호세 루이스 콘트레라스-비달 José Luis ContrerasVidal 박사의 도움으로, 오스틴과 나는 전극들이 장착된 모자를 썼다. 두개골 속의 무수한 뉴런들에서 유래한 전기 신호를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뇌전도 기록법으로 뇌파를 측정하면, 우리 두 사람이 컵 쌓기를 하는 동안 각자의 뇌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직접 비교할 수 있을 것이었다. 뇌전도 기록용 모자를 쓰는 것은, 두개골 내부로 통하는 창을 엉성하게 내는 것과 같다.
오스틴은 자신이 늘 하는 동작들을 내게 차근차근 보여주었다. 나는 열 살 꼬마에게 처참하게 지기는 싫어서 공식 시합 전에 20분 동안 그 동작들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노력은 부질없었다. 오스틴이 완승했다. 내가 전체 과정의 8분의 1도 채 마치지 못했을 때, 오스틴은 승리를 선포하듯이 컵들로 바닥을 내리치며 마지막 배열을 완성했다.
패배는 이미 예상했지만, 뇌전도에서 드러난 바는 무엇이었을까? 오스틴이 그 동작들을 8배 빠르게 했다면, 그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으리라고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 그러나 이 추론은 뇌가 새로운 솜씨를 습득하는 것에 관한 기본 규칙 하나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다. 실제로 뇌전도를 비교해보니, 과부하가 걸린 쪽은 오스틴의 뇌가 아니라 나의 뇌였다. 나의 뇌는 그 새롭고 복잡한 과제를 수행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했다. 나의 뇌전도는 베타파 진동수 구역에서 강한 활동을 나타냈다. 베타파는 다양한 문제 풀이와 관련이 있다. 반면에 오스틴의 뇌전도를 보니, 알파파 구역의 활동이 강했다. 이 뇌파는 뇌가 휴식할 때 발생한다. 오스틴의 동작들은 빠르고 복잡했지만, 그의 뇌는 평온했던 것이다.
오스틴의 날랜 솜씨는 그의 뇌에서 일어난 물리적 변화들의 최종 결과다. 그가 여러 해에 걸쳐 연습하는 동안, 뇌에서 특수한 물리적 연결 패턴들이 형성되었다. 그는 말하자면 뉴런들의 구조 속에 컵 쌓기 솜씨를 새겨 넣은 것이다. 반면에 나의 뇌는 의식적 노력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나는 범용 인지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반면, 오스틴은 그 솜씨를 위해 특화된 인지 하드웨어를 갖춰놓은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솜씨를 연습하면, 그 솜씨는 의식 아래로 가라앉아 물리적 하드웨어가 된다. 어떤 이들은 그런 하드웨어를 '근육 기억muscle memory'으로 부르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솜씨가 근육에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컵 쌓기와 같은 익숙한 과정은 뇌 속 빽빽한 연결들의 밀림 전체에 의해 수행된다.
오스틴의 뇌 속 연결망들의 세부 구조는 그가 여러 해에 걸쳐 컵 쌓기를 연습한 결과로 변화했다. 자전거 타기나 신발끈 묶기 같은 일들을 자동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장기 기억을 일컬어 '절차 기억 procedural memory'이라고 한다. 오스틴에게 컵 쌓기는 뇌의 미시적 하드웨어에 절차 기억으로 새겨졌다. 그래서 그의 동작은 빠르고 에너지 효율이 높다. 연습 과정에서 신호들이 특정 신경망들을 반복해서 통과했고, 그 결과로 시냅스들이 강화되어 컵 쌓기 솜씨가 회로에 새겨졌다. 오스틴의 뇌가 도달한 전문성은 심지어 그가 눈을 가리고도 실수 없이 컵 쌓기 과정을 완수할 수 있을 정도다.
반면에 내가 컵 쌓기를 배울 때, 나의 뇌는 느리고 에너지 소비가 많은 구역들인 앞이마엽 피질, 마루엽 피질, 소뇌 등을 동원한다. 오스틴은 그 익숙한 과정을 수행할 때 이 구역들을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새로운 운동 솜씨를 학습하는 초기 단계에는 소뇌가 특히 중요한 구실을 한다. 정확성과 완벽한 때 맞춤을 위해서는 동작들의 협응이 필요한데, 이 협응을 소뇌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학습이 충분히 진행되면, 솜씨는 하드웨어가 되면서 의식적 통제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러면 우리는 과제를 생각(의식적 자각) 없이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다. 일부 경우에는 솜씨를 담당하는 회로가 뇌보다 더 낮은 층위인 척수에서 발견될 정도로 솜씨의 하드웨어화가 철저히 이루어진다. 이 사실은 뇌의 상당 부분을 절제했는데도 여전히 정상적인 걸음으로 쳇바퀴를 돌리는 고양이들에서 관찰되었다. 그 고양이들에서는 걷기와 관련된 복잡한 프로그램들이 신경계의 낮은 층위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자동 조종 장치
평생 내내 우리의 뇌는 우리가 수행하는 과제를 담당할 회로를 형성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킨다. 예컨대 걷기, 파도타기, 저글링, 수영, 운전 등을 담당할 회로를 형성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뇌 구조에 프로그램을 새겨 넣는 능력은 뇌의 가장 강력한 묘수들 중 하나다. 뇌는 복잡한 운동 과제를 전담하는 회로를 하드웨어에 새겨 넣음으로써 그 과제를 아주 적은 에너지만 써서 수행할 수 있다. 일단 뇌 회로에 새겨진 솜씨는 생각(의식적 노력) 없이 실행될 수 있다. 따라서 자원이 절약되고, 의식적인 나는 다른 과제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몰두할 수 있다.
이 같은 자동화가 낳은 결과는 솜씨가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범위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다. 당신은 의식 아래에서 작동하는 복잡한 프로그램들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당신은 자신이 어떻게 솜씨를 발휘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당신이 친구와 대화하면서 계단을 오를 때,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십 가지 미세조정에 관한 계산을 어떻게 하는지, 당신의 혀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정확한 발음을 어떻게 산출하는지 당신은 전혀 모른다.
이것들은 당신이 때로는 해내지 못하는 어려운 과제들이다. 그러나 당신의 행동들이 자동화하고 무의식화하기 때문에, 당신은 자동 조종 장치를 켤 수 있게 된다. 매일 다니는 경로로 차를 몰아 귀가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니 집에 도착했는데, 방금 내가 어떻게 운전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우리는 누구나 안다. 운전과 관련한 솜씨들이 충분히 자동화되었기 때문에, 그 능숙한 솜씨들을 무의식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그럴 때 의식적인 당신 (당신이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되살아난 부분)은 운전자가 아니라 기껏해야 동승자일 뿐이다.
솜씨 자동화에 따른 흥미로운 귀결이 하나 있다. 자동화된 솜씨에 의식적으로 개입하려는 시도는 대개 실적을 악화시킨다. 숙달된 솜씨는, 매우 복잡한 솜씨라 하더라도, 고유한 장치에 맡길 때 가장 잘 발휘된다.
한 예로 암벽 등반가 딘 포터Dean Potter를 보자. 최근에 사망할 때까지 그는 밧줄과 안전장비 없이 암벽을 탔다. 그가 암벽등반에 삶을 바치기 시작한 것은 열두 살 때부터였다. 여러 해에 걸친 연습의 결과로 그의 뇌에는 대단한 솜씨와 정확성이 새겨졌다. 암벽등반 솜씨를 발휘할 때 딘은 숙련된 회로들을 신뢰하면서 의식적인 숙고로 방해하지 않고 그것들에 일을 맡겼다. 모든 통제권을 무의식에게 넘긴 것이다.
그는 흔히 '몰입flow'으로 불리는 뇌 상태에서 암벽을 탔다. 극한 스포츠extreme sports 선수들은 대개 '몰입' 상태에서 자기 능력을 한계까지 발휘하기를 즐긴다. 많은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딘은 자신을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몰아넣음으로써 몰입 상태에 진입했다. 그 상태에서는 내면의 목소리가 그의 행동을 간섭하지 않았고, 그는 여러 해에 걸친 헌신적인 훈련의 결과로 그의 하드웨어에 새겨진 등반 능력에 온전히 의지할 수 있었다.
컵 쌓기 챔피언 오스틴 네이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몰입 상태에 진입한 극한 스포츠 선수의 뇌파는 의식적 숙고의 재잘거림(내가 멋있게 보일까? 내가 이러이러한 말을 해야 할까? 내가 집에서 나올 때 문을 잘 잠갔나?)으로 요란하지 않다. 몰입 상태의 뇌에서는 '이마엽 저하hypofrontality'가 일어난다.(Taking Time to Not Think) 이 용어는 앞이마엽피질의 몇몇 부위에서 일시적으로 활동이 감소하는 것을 뜻한다. 그 구역들은 추상적 사고, 미래 계획, 자아감에 주의 집중하기를 담당한다. 이 배경 활동들을 줄이는 것은 선수가 암벽을 타는 비법의 핵심이다. 딘이 발휘한 것과 같은 솜씨는 내면의 재잘거림이 없을 때만 발휘될 수 있다.
많은 경우에 의식은 구석으로 물러나 있는 것이 최선이다. 더 나아가 몇몇 유형의 과제에서는 사실상 그것이 유일한 선택지다. 왜냐하면 무의식적 뇌는 의식적 정신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를 생각해보라. 투수가 마운드에서 던지는 속구는 시속 160킬로미터로 홈플레이트까지 날아올 수 있다. 그런 속구를 치려면, 타자의 뇌는 겨우 0.4초 안에 반응해야 한다. 그 짧은 시간에 뇌는 복잡한 동작들을 지휘하여 공을 때려내야 한다. 그 시간 내내 타자는 공과 연계되지만, 타자가 의식적으로 그 연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공이 너무 빠르게 날아오기 때문에, 타자는 공의 위치를 의식적으로 알아챌 여유가 없다. 타격은 타자가 자신의 동작을 알아채기도 전에 완료된다. 의식은 구석으로 물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이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7). 더 브레인 (전대호, 역). 서울: 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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