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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science Book/Creativity

인간의 창의력은 진공 상태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14. 10:00

2007년 1월 9일 스티브 잡스는 평소 즐겨 입는 청바지에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맥월드MacWorld 무대에 섰다. 그는 “가끔 혁명적인 제품이 나와 모든 걸 바꿔놓습니다”라고 말한 뒤 이렇게 선언했다.

“오늘, 애플은 전화기를 재발명하려 합니다."


여러 해 동안 이어진 무성한 소문과 추측 끝에 드디어 아이폰이 나온 것이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그 비슷한 것조차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손에 들고 다니는 소형 PC 겸 통신 장치 겸 음악 재생기였다. 매스컴은 마법에 가까운 선구적인 제품이라며 환호했고 블로거들은 아이폰을 '지저스 폰Jesus Phone'이라고 불렀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갑자기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지만 아이폰에는 위대한 혁신의 특징이 그대로 담겨 있다.

카시오 AT-550-7 손목시계(좌), IBM 사이먼(우)

겉모습과 달리 혁신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혁신은 발명 가계도 혹은 족보 중 가장 최근의 가지에서 나온다. 수십 년간 첨단 기기를 수집해온 과학 연구자 빌 벅스턴은 오늘날의 첨단기기에 영향을 준 다양한 기술 DNA 계보를 그렸다. 예를 들어 1984년 등장한 카시오 AT-550-7 손목시계를 생각해보자. 사용자는 여기에 담긴 터치스크린 기능으로 시계 화면에서 손가락으로 튕기듯 바로 숫자를 조작할 수 있었다.

10년 후, 그러니까 아이폰이 나오기 13년 전 IBM은 휴대 전화에 스크린을 추가했다. 그 휴대 전화 사이먼은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으로 기본적인 앱이 깔리고 스타일러스 펜도 달려 있었다. 팩스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기능, 세계 시간 기록계, 노트패드, 달력, 단어 자동 완성 프로그램도 장착했다. 그런데 왜 사이먼은 그냥 사라졌을까? 아쉽게도 배터리가 1시간밖에 지속되지 않았고 당시 휴대 전화 요금이 너무 비쌌으며 이용할 만한 앱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카시오의 터치스크린과 마찬가지로 사이먼은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아이폰에 자신의 유전 물질을 남겼다.

데이터 로버 840(좌), 팜 Vx(우)

카시오가 나오고 4년 뒤 스타일러스로 3D 조종이 가능한 개인용 디지털 보조장치 데이터 로버 840이 나왔다. 이로써 사용자는 연락처 목록을 메모리칩에 저장해 어디든 갖고 다닐 수 있었다. 휴대용 컴퓨터의 토대가 다져지고 있었던 셈이다.

빌 벅스턴은 자신이 수집한 첨단 기기를 살펴본 뒤 전자 제품 산업의 길을 닦아준 여러 기기를 선별했다. 이를테면 1999년 등장한 팜 Vx는 요즘 전자 제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얇은 두께를 구현했다. 벅스턴은 말했다. “그 덕에 오늘날의 노트북처럼 두께를 얇게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는 말을 이었다.

“뿌리가 어디 있느냐고? 여기 있다, 바로 여기."

스티브 잡스의 '혁명적' 제품을 위한 기초 공사는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었다. 즉 '지저스 폰'은 처녀가 잉태해서 태어난 게 전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 이후 몇 년 뒤 작가 스티브 시콘은 해묵은 《버펄로 뉴스》 1991년판 신문을 구입했다. 그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신문 1면에서 미국 소매업체 라디오섹RadioShack 의 광고를 발견했다.

스티브 시콘은 그 광고에 실린 모든 전자 제품을 합친 게 자기 주머니 속에 있는 아이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0년 전만 해도 소비자가 그 제품들을 모두 사려면 3,054달러 82센트를 써야 했으나 이제 그 비용의 일부만으로 제품을 모두 합치고도 무게가 140g에 불과한 기기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 광고는 아이폰의 가계도를 한눈에 보여주는 족보나 다름없었다.

빌 벅스턴의 말처럼 혁신 기술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발명가들이 영웅처럼 생각하는 이들의 뛰어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빌 벅스턴은 아이폰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를 자기 작품에 종종 다른 뮤지션을 인용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같은 뮤지션에 비유한다. 그는 "만일 당신이 음악사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지미 헨드릭스의 진가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역사학자 존 거트너는 이런 글을 썼다.

대개 발명은 한순간에 이뤄진다고 상상한다. 발명가에게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이 찾아오고 놀라운 계시 같은 걸 받는다고 말이다. 사실 기술 분야에서 일어나는 괄목할 만한 발전에는 정확한 출발점이 거의 없다. 처음에는 발명을 앞두고 이런저런 사람과 아이디어가 한데 모이면서 힘을 축적한다. 그렇게 몇 개월이나 몇 년(또는 몇십 년)을 거치며 그 힘이 점점 강해지고 분명해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추가되는 것이다.


훗날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창의력은 그저 이것저것을 연결하는 일이다. 창의적인 사람에게 어떻게 그걸 해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자신이 실제로 그것을 한 것이 아니라서 약간의 죄의식 같은 걸 느낀다. 그들은 단지 무언가를 봤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분명해 보이면 여기에 자신의 경험을 연결해 새로운 것으로 합성한다.
2001년 애플이 내놓은 아이팟(좌), 케인 크레이머의 원안(1979, 우)


케인 크레이머의 아이디어도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소니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워크맨은 1963년에 나온 카세트테이프의 영향을 받았고 다시 카세트테이프는 1924년에 나온 릴테이프 덕에 생겨났다. 이런 식으로 모든 발명은 계속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즉 모든 것은 이전에 있던 혁신 생태계에서 생겨난다.

인간의 창의력은 진공 상태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주변 원재료를 토대로 세상을 리모델링한다. 지나온 역사와 현재 상태를 알면 다음 세대 산업의 큰 틀이 보인다. 자신이 수집한 첨단 기기를 연구한 빌 벅스턴은 대개 20년 정도가 지나면 새로운 콘셉트가 시장을 지배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잡지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 말이 믿을 만하다면 10년 후 10억 달러 가치를 지닐 물건은 이미 1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말 또한 믿을 만하다. 이는 혁신에 접근하는 우리의 방식을 송두리째 뒤바꿔놓는 얘기다. 세상에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발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탐사하고 채굴하고 정제하고 세공해 그 무게만큼의 금보다 더 가치 있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