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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기: 가능성의 문을 여는 변형 본문

Neuroscience Book/Creativity

휘기: 가능성의 문을 여는 변형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15. 10:00

1890년대 초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는 루앙 대성당 맞은편에 방을 하나 얻었다. 그리고 2년간 그는 그 성당의 정문을 30장 이상 그렸다. 그는 시각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한 채 똑같은 각도에서 성당 앞면을 그리고 또 그렸다. 한데 똑같은 장면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들 가운데 똑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었다. 이는 모네가 성당을 다른 빛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 그림에서는 정오의 태양이 성당 정면을 표백한 듯 창백해 보이고 어떤 그림에서는 황혼녘의 태양이 성당을 붉은색과 오렌지색으로 비춘다. 한 가지 원형을 계속 새로운 방법으로 그리면서 모네는 첫 번째 창작 도구인 휘기를 활용했다.

모네가 그린 루앙 대성당 앞면 그림 (1892~1894)



휘기는 드러내기도 하지만 은밀하게도 행해진다. 예를 들어 순환기내과를 생각해보자. 의학계에는 오래전부터 인공 뼈와 의수, 의족을 만들듯 인공 심장을 만들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1982년 의학계는 인공 심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해 12월 1일 윌리엄 더브리스 박사는 퇴직한 치과의사 버니 클라크에게 인공 심장을 장착했고 이후 클라크는 4개월을 더 살다가 인공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 숨을 거뒀다. 이는 생체공학 분야에서 거둔 놀라운 성공이었다.

한 가지 문제는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인공 심장 펌프의 작동부분이 빨리 닳아버리는 것이었다. 기계를 사람의 가슴 안에 맞춰 넣는것도 난제였다. 2004년 의사 빌리 콘과 버드 프레이저가 새로운 해결책을 들고 나왔다. 알다시피 자연적인 수단은 몸 안에서 피를 펌프질해 계속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해결책이 단 한 가지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콘과 프레이저는 피를 끊임없이 돌리는 방법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분수의 물이 그 자체 내에서 계속 순환하듯 심장도 피가 심실을 통과할 때 산소를 공급하고 바로 돌아 나올 수는 없을까?

2010년 미국 부통령 딕 체니는 계속 순환하는 인공 심장을 장착했다.그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만 그때 이후로 맥박이 뛰지 않는다. 맥박은 순전히 심장 펌프 작용의 부산물일 뿐 꼭 있어야 하는 기능은 아닌 셈이다. 어쨌든 콘과 프레이저는 자연의 원형을 작업대 위에 올려 새로운 형태의 심장을 만들어냈다.



휘기는 여러 방식으로 어떤 자원을 리모델링한다. 그러면 크기를 생각해보자. 넬슨 앳킨스 미술관 앞 잔디밭에 서 있는 클래스 올덴버그와 코셰 반 브루겐의 작품 <셔틀콕shuttlecocks〉은 티피Teepee (천장이 높은 피라미드 형태의 아메리카 원주민 텐트 -옮긴이) 크기로 확대되어 있다. 본명이 알려지지 않은 설치 예술가 JR은 2016년 하계 올림픽 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건물 꼭대기에 고공 점프 전문가 알리 모흐드 유네스 이드리스의 거대한 조각을 설치했다.

클래스 올덴버그, 코셰 반 브루겐, 셔틀콕 (1994)

설치 예술가 JR의 거대한 조각 (2016)



확대 가능한 것은 축소할 수도 있다. 2차 세계 대전 중 망명가로서 한 호텔 방에 감금되다시피 했던 건축가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잔뜩 위축되어 미니어처 인간 조각상 시리즈를 만들었다. 프랑스화가 아나스타샤 엘리아스는 휴지심 안쪽에 들어갈 정도의 미니어처 작품을 만들고 있다. 화가 비크 무니즈는 이온 빔을 집중해 모래알에 나노 크기의 그림을 새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광장(1947~1948)
아나스타샤 엘리아스, 피라미드 (미상)
비크 무니즈, 모래성 #3 (2014)



크기뿐 아니라 형태도 휘기가 가능하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일반적으로 평평한 건물 외형을 비틀어 때론 물결치는 형태로 또 때론 뒤틀린 형태로 바꿔놓았다.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1991), 루 루보 뇌건강 센터 (2010), 댄싱 하우스 (1996)


이와 비슷한 휘기로 미래 자동차에 더 많은 연료를 담을 수는 없을까? 가솔린 엔진을 수소 엔진으로 전환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는 연료 탱크의 크기다. 표준적인 수소 연료 탱크는 통 모양으로 큰 적재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한데 볼류트라는 회사가 휘기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그들은 연료 탱크를 겹겹이 쌓는 형태로 바꿔 차체의 쓰이지 않는 공간에 보이지 않게 집어넣었다.

볼류트 사의 변형한 연료 탱크



인간 두뇌는 어떤 원형을 끝없이 다양한 형태로 휘고자 한다. 현재 소프트 로봇 전문 업체 아더랩은 소프트 로봇공학을 실험하는 중인데 그들은 금속 대신 가볍고 값싼 천을 사용한다. 이 회사의 팽창형 로봇은 재래식 로봇보다 훨씬 가볍고 배터리 소모도 적다. 특히 개미 바퀴벌레 로봇은 자신의 무게보다 10배 이상 무거운 것을 실어 나른다. 이처럼 소프트 로봇공학은 새로운 가능성을 대폭 열어젖히고 있다. 이 회사 연구진은 그동안 흐물흐물한 로봇을 제작했는데 이것은 지렁이나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기어 다닌다. 금속 로봇이 넘어지거나 꼼짝하지 못하고 갇힐 지형에서도 이들은 돌아다닐 수 있다. 또한 소프트 로봇은 깨지기 쉬운 것도 잘 집어 들고 금속 로봇이 다룰 수 없는 신선한 달걀이나 연약한 생체조직 같은 것도 다룬다.

아더랩 사의 개미 바퀴벌레 로봇



뇌는 어떤 한 가지 주제로 끊임없이 변주곡을 연주하는데 시간 경험도 그 주제 중 하나다. 영화 <300>은 전투 신에서 사람들의 일반적인 예측을 깨기 위해 패스트 모션과 슬로 모션을 번갈아 사용했다.

영화 '300'


기술 분야에서도 이와 동일한 속도 휘기를 이용한다. 앞서 말한 혈액이 지속적으로 흐르는 인공 심장은 처음에 예기치 못한 이유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혈액이 흐르면서 소용돌이가 생기고 혈액이 급커브를 도는 곳에 혈전이 형성되어 뇌졸중 발병 위험이 높아진 것이다. 여러 해결책으로 실험해본 끝에 프레이저와 콘은 혈액 흐름 속도를 조절해 혈전 형성을 막을 수 있음을 알아냈다. 결국 두 사람은 맥박 없는 인공심장이 미세하게 속도를 조정하도록 프로그래밍해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걸 막았다. 영화 <300>에서 속도가 폭력성을 과장해서 보여주었다면 인공 심장은 동일한 휘기로 생명을 연장한 셈이다.



인간의 뇌는 극장뿐 아니라 연구실에서도 시간을 되돌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스위스 물리학자 에른스트 스튜에켈베르크는 양전자(반물질의입자)의 움직임을 시간 속을 거슬러가는 전자의 움직임으로 그려냈다. 우리의 인생 경험에 반하는 일이긴 하지만 시간 역류는 아원자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같은 맥락에서 과학자들은 지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네안데르탈인을 복제하겠다는 목표를 추구하는 중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유전학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종으로 유전자 10개 중 하나 정도가 우리와 다르다. 그들 역시 연장을 사용했고 죽은 이를 땅에 묻었으며 불을 피웠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크고 강했지만 우리 조상은 그들과의 경쟁에서 완승을 거뒀다. 3만 5,000년에서 5만 년 전 사이에 마지막 네안데르탈인이 멸종된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 생물학자 조지 처치는 현대 인류를 비롯해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연구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 Reverse Engineering (이미 존재하는 시스템을 역추적해 처음 문서나 설계 기법 등을 얻어내는 기법. - 옮긴이)을 제안했다. 핀터가 무대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듯 생물학자가 인간의 진화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네안데르탈인의 줄기세포를 만들고 그것을 적절한 여성의 자궁 안에 이식하자는 얘기였다. 처치의 이 아이디어는 아직 추정에 불과하지만 여하튼 뇌가 시간 흐름을 조정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다.



어떤 창의적인 휘기는 강렬하고 또 어떤 것은 미미하다. 1960년대 미술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모네의 성당 그림에 경의를 표했다. 그의 실크 스크린 작품은 보다 투박하고 단조롭지만 모네에게 바치는 작품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루앙 대성당 세트 5 (1969)


만약 극단적으로 왜곡할 경우 원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모호할수 있다. 모네의 두 그림은 그가 파리 서쪽 지베르니의 자기 집에 있는 일본 다리를 그린 것인데, 그림 대상이 같다는 걸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과 일본 다리 (1897~1899), 일본 다리 (1920~1922)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