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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적 감각과 고도의 창의성 본문

Neuroscience Book/Creativity

동물적 감각과 고도의 창의성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13. 10:00

만일 당신이 어떤 좀비와 마주앉아 저녁 식사를 한다면 그 좀비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듣고 감명을 받을 거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 않을 것이다. 좀비의 움직임은 자동적이며 미리 입력된 대로 틀에 박힌 행동만 한다. 좀비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회고록을 쓰거나 달에 우주선을 쏘아 올리거나 헤어스타일을 바꾸지 않는다.

비록 실재하지는 않지만 좀비는 자연계와 관련해 우리에게 무언가 중요한 걸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동물의 왕국 생명체는 대개 자동화한 행동을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벌을 생각해보자. 푸른 꽃에 앉든 노란 꽃에 앉든 공격을 하든 날아가든 벌은 언제 어떤 자극을 주어도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왜 벌은 창의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까? 벌은 신경계 단위인 뉴런이 고정적이라 소방관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물통을 전달하듯 각종 신호를 단순히 입력에서 출력으로 전달하기만 한다. 벌은 태어날 때부터 뇌 속에서 이러한 물통 전달 과정을 시작한다. 화학적 신호가 뉴런의 경로를 결정하고 서로 다른 뇌 부위에 움직이기, 듣기, 보기, 냄새 맡기 같은 기능을 할당한다는 말이다. 새로운 구역을 탐험할 때도 벌은 주로 자동 비행 모드로 움직인다. 좀비와 논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듯 당신은 벌과도 논리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 벌은 수백만 년 동안의 진화 과정에서 생각하는 기능을 내장한 생물학적 기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도 벌과 같은 면이 아주 많다. 먼저 우리는 벌과 똑같은 신경 메커니즘 덕에 걷고 씹고 숙이고 소화하는 것처럼 수많은 본능적 행동을 한다. 심지어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도 그 기술을 신속히 습관화해 능률을 높인다. 가령 자전거 타기, 자동차 운전, 스푼 사용, 타이핑 등을 배울 때 우리는 그 일을 빠른 경로로 신경 회로에 연결한다. 이때 뇌가 실수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빠른 경로를 선호한다. 이런저런 일에 쓰이지 않는 뉴런에게는 더 이상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다.

만약 모든 얘기가 여기서 끝이라면 우리가 아는 인간 생태계는 존재할 수 없다. 당연히 소네트, 헬리콥터, 포고스틱(일명 스카이콩콩.-옮긴이), 재즈, 타코 매장, 깃발, 만화경, 색종이 조각, 칵테일 등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대체 벌과 인간의 뇌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벌의 뇌에는 뉴런이 100만 개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뇌에는 1,000억 개가 있어서 행동 레퍼토리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인간은 뉴런의 양뿐 아니라 조직측면에서도 장점을 갖추고 있다. 감각(저기 뭐가 있지?)과 행동(내가 하려는 건 이런 거야) 사이에 더 많은 뇌세포가 존재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어떤 상황을 파악해 이것저것 따져보며 대안을 생각하고 필요한 경우 행동에 옮긴다. 우리가 삶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일은 느낌과 행동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사적인 것에서 창의적인 것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인간의 뇌 피질이 엄청나게 커지면서 수많은 뉴런이 초기의 화학적 신호로부터 벗어났고 그 부위에서 보다 융통성 있는 연결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수많은 뉴런이 자유로워지면서 인간은 다른 어떤 종보다 큰 정신적 유연성을 얻었다. 동시에 인간은 '조율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조율한 행동(자동화한 행동의 반대)에는 시를 이해하고 친구와 매번 다른 대화를 하며 어떤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 같은 생각과 예견이 포함된다. 혁신적 아이디어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 역시 그런 종류의 생각이다.

신경학적 수다는 버튼식 반사적 반응보다 의회식 토론에 더 가깝다. 모두가 토론에 참여하고 합종연횡이 이뤄지는 까닭이다. 강한 공감대를 형성할 경우 한 아이디어가 의식 위로 떠오르지만 갑작스런 깨달음이라고 여기는 것은 사실 폭넓은 내부 토론의 결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음에 같은 질문을 던질 때 그 대답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벌은 아마 자신의 여왕벌에게 <천일야화>를 들려주지 못하고 매일 그렇고 그런 똑같은 밤을 보낼 것이다. 벌의 뇌가 매번 똑같은 길을 가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은 즉시즉시 변화하는 신경 구조 덕분에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주변의 모든 것을 리모델링할 수 있다.

인간은 습관을 반영한 '자동화한 행동'과 습관을 무시하는 '조율한 행동' 간의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의 뇌는 효율성을 위해 어떤 신경망을 간소화하는 것일까, 아니면 융통성을 위해 어떤 신경망을 조율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 두 가지 능력 모두에 의존한다. 자동화한 행동은 우리에게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준다. 이로써 조각가와 건축가, 과학자는 숙련된 기술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자동화한 행동으로는 혁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새로운 것은 조율한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조율한 행동이 창의력의 신경학적 토대다. 창의력이란 소설가 아서 쾨슬러의 말처럼 “독창성으로 습관을 깨버리는 것”이거나 발명가 찰스 케터링이 말했듯 "지도에 나온 대로 남들이 모두 이용하는 25번국도를 타지 않고 더 빠른 35번 국도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