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roscience Study
창의성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본문
우리가 창의적일 때 뇌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지식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이제는 창의성의 과정을 베일에 가려진 블랙박스처럼 취급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창의적인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창의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마엽(고등 인지기능이 일어나는 장소) 등의 영역에만 관심을 국한하지 않고 뇌의 더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영역인 시상thalamus으로도 관심을 확장했다.
시상은 정보를 분류한다.
우리 뇌 속에서는 막대한 양의 정보가 끊임없이 분류되고 있다. 지금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는지, 팔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실내가 따듯한지, 추운지 더운지, 숨 쉴 때 폐에 공기가 얼마나 자주 들어차는지,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고 있는지 등등... 우리 뇌는 밤낮을 가리지않고 이런 정보를 지속해서 받아들인다. 우리는 그중 일부만 의식하고 나머지는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자기가 어떻게 숨 쉬고 있는지나 다리가 어떻게 놓여 있는지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부분까지 신경 써서는 안 된다. 이런 정보가 모두 우리 의식으로 들어온다면 이 초기 인상initial impression 말고는 다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시상은 우리 의식이 과도한 정보의 홍수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일종의 정보 필터로 작용한다. 시상은 모든 바퀴살이 모이는 바퀴축처럼 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시상이 이렇게 중심에 위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뇌의 서로 다른 영역(예를 들면 시각 중추의 정보들이 시상으로 모이면 시상은 그중 어떤 신호를 의식으로 올려보낼지 결정한다. 시상은 상사(즉, 대뇌겉질과 우리의 의식)가 참석해야 할 회의와 빠져도 될 회의를 골라주는 비서와 비슷하다. 시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대뇌겉질은 정보 과부하에 걸려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 마치 비서가 판단을 제대로 못 해서 온갖 회의 약속을 모두 잡는 바람에 시도때도 없이 회의에 참석하느라 효율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상사처럼 말이다.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기
요즘에는 조현병schizophrenia (정신분열증)이라는 정신질환에서도 이런 정보 과부하가 일어난다고 믿는다. 조현병을 앓는 사람은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하고 망상이나 환각 같은 증상을 경험한다. 조현병 환자의 뇌가 한꺼번에 강한 인상impression을 너무 많이 받아들이는 바람에 실제 세상과의 끈을 붙잡고 있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황이 많다. 이 때문에 조현병 환자는 실제의 대안으로 무의식중에 자신의 주변에 대해 허구의 그림을 창조해낸다. 아주 괴상한 사고패턴을 보일 때도 많다. 가끔 내가 만나는 환자 중에는 그런 이상한 망상에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동전에는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많은 양의 정보를 통과하게 하는 시상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꼭 약점도 아니고,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는 창의성과도 연관된 듯 보인다. 뜻밖의 연상 작용을 통해 틀을 벗어난 창의적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뇌겉질과 의식이 수많은 신호를 받으면 독특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면 우리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시상이 제대로 필터 작용을 하려면 도파민이 필요하다(그렇다. 도파민은 여기서도 중요하게 작동한다. 하지만 너무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고 딱 알맞은 정도라야 한다. 도파민 수치가 정상에서 벗어나면 시상을 통과하는 신호의 숫자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해 정보 과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이롭게 작용할 수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바꿔 말하면 시상의 도파민 수치에 따라 창의성 증가로 이어지기도 하고,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도 그래 보인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교수 겸 신경과학자 프레드릭 울렌 Fredrik Ullen이 시행한 실험 덕분에 확산적 사고 창의성 검사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올리는 사람들은 시상에 도파민 수용체가 적어서 보기 드문 도파민 수치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결과, 이들의 시상은 더 많은 신호를 통과하게 해서 더 창의적인 사고를 하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창의성 검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조현병 환자에게서도 똑같은 현상이 관찰되는데(이들도 시상의 도파민 수용체가 적어 보인다), 이들은 창의적 사고 대신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자가 될지 창의적인 천재가 될지 가르는 요소는 대체 무엇일까? 현재로서는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한다. 우리 뇌가 다른 면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정보의 흐름 증가가 골칫거리가 아닌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뇌의 탄력 회복성이 우수한 덕분에 허구의 실체를 구축하지 않고도 추가 정보의 압박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고 독창적이고 창의적일 수 있으며, 독특한 방식으로 자유연상free association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뇌가 정보를 정상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면 폭주하는 정보를 감당하지 못해 정신질환으로 빠져들어 실제 세상과의 끈을 놓치게 된다.
뇌와 관련해서는 상황이 흑백으로 명확하게 나뉘는 경우가 드물다. 그 사람이 어떤 능력을 갖추었는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잘라서 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대량의 정보를 통과하게 하는 시상을 가진 사람을 창의적인 사람 아니면 정신병 환자라고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다. 그 사이에 몇몇 특징의 흔적이 보이고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른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창의성과 정신질환 사이에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이 펼쳐져 있고, 사람들은 그 위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해야 해서 뇌가 그 부하를 감당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다. 그런 사람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 가서는 거의 정신질환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기도 하고, 뇌가 부드럽게 돌아갈 때는 다른 사람들이 꿈꾸지 못하는 독창적인 것을 창조해낼 수도 있다.
천재와 미치광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역사를 보면 창의성과 광기가 종이 한 장 차이임을 보여주는 인물이 참으로 많다. 유명한 사례 두 명을 들자면 화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있다. 이 두 사람은 엄청나게 창의적이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정신질환을 앓기도 했다. 조금 더 최근 사례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존 내쉬John Nash를 들 수 있다. 오스카상 수상작 영화 <뷰티풀 마인드 A Beautiful Mind>에서 영화배우 러셀 크로우 Russel Croweowe가 열연했던 배역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했던 존 내쉬는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수학자 중 한 명이었으나, 조현병도 함께 앓았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망상에 시달렸으며 누군가 자기를 따라다니면서 위협하고 자신을 해치려고 음모를 꾸민다고 믿었다. 자신의 병이 축복이자 저주라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의 탁월한 창조적 능력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훌륭한 과학 개념은 절대로 생각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창의성이 대단히 뛰어나도 정신질환을 앓지 않는 사람이 많지만, 그 대신 가족 중에서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도 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조현병을 앓는 아들이 있었다. 철학자 겸 저자, 정치인이었던 박식가 버트란드 러셀 Bertrand Russel은 조현병이 있는 친척이 많았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음악계의 최고 권위자중 한 명이었던 데이비드 보위 David Bowie 는 형제가 조현병이었다.
이런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한 가지 가능성은 창의적인 사람과 정신질환이 있는 가족 모두 시상을 통과하는 정보의 양이 보통 사람보다 많아서 생각의 흐름도 더 강렬하다는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과도한 정보를 감당할 수 있는 뇌를 가졌고, 또 그 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런 사람들은 천재가 되었다. 반면, 회복탄력성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던 가족은 정신질환을 앓았다.
생각의 흐름을 촉진하고, 그 흐름을 감당할 능력을 키우자!
이마엽은 생각의 흐름을 시상을 통해 흘려보내 아이디어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핵심적 역할을 하는 듯하다.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운동은 이마엽을 강화한다. 단기적으로는 혈류량을 늘려 이마엽이 더 잘 작동하게 해서 효과를 나타내고, 장기적으로는 3장에서 자세히 알아본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효과를 나타낸다. 운동은 생각의 흐름을 활용해서 무언가 생산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조건을 향상한다.
덧붙여 말하면 운동은 그저 생각의 흐름을 다루는 능력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생각의 실제 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어떤 메커니즘이 이를 담당하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한 가지 가능성은 신체활동이 시상의 필터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 도파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파민은 많을 때나 적을 때 중 어느 한 쪽이 항상 더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뇌의 시스템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서 무언가가 너무 많거나 적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현상을 설명하려는 이론은 지나치게 단순해지기 쉽다. 이 현상을 이해하는 한 방법은 서로 다른 시스템이 대략 조율된 상태에서 운동이 도파민 시스템을 미세조정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과정이 감정과 시상을 통과하는 정보의 양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얼마나 창의적인 사람이 될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기본적인 창조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재능으로 무엇을 할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창의성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는 대단히 많지만, 신체활동은 그중에서도 더욱 중요하다. 일하다 풀리지 않아 막히는가? 쓰고 싶은 책이나 창업하고 싶은 회사가 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인가? 그렇다면 나가서 달리자! 달리기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베토벤에게 기적을 낳았다면, 우리에게도 분명 기적을 낳을 것이다.
안데르스 한센. (2018). 움직여라, 당신의 뇌가 젊어진다 (김성훈, 역). 서울: 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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