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roscience Study
섞기: 아이디어의 무한한 결합 본문
섞기에서는 인간의 뇌가 두 가지 이상의 자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한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섞은 신화적 존재를 많이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람과 소를 합쳐 미노타우로스를 만들었고 이집트에서는 인간과 사자를 합쳐 스핑크스를 만들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여자와 물고기를 합쳐 마미 와타Mami Wata, 즉 인어를 만들었다. 대체 두 종 이상의 상이한 유전자 세포를 섞어 이런 키메라Chimera (한 개체 내에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유전적 조직이 함께 존재하는 현상. - 옮긴이)를 만들어낸 마법은 무엇일까? 이는 익숙한 개념의 새로운 결합이다.
인간의 뇌는 동물과 동물을 섞기도 한다. 그리스의 페가수스는 날개 달린 말이고 동남아시아의 가자심하Gajasimha (힌두 신화에 등장하는 영묘한 짐승.-옮긴이)는 사자 몸에 코끼리 머리가 달린 동물이다. 영국의 문장紋章에 나오는 알로카메루스Allo-Allocamelus는 낙타 몸에 당나귀 머리가 달린 동물이다. 신화 속 존재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슈퍼히어로 중에도 키메라 부류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배트맨, 스파이더맨, 앤트맨, 울버린 등이다.
섞기는 과학에도 존재한다. 유전학자 랜디 루이스는 거미줄에 엄청난 상업적 잠재력이 있다는 걸 알았다. 강철보다 몇 배 더 강하니 말이다. '거미줄을 대량 생산할 수 있으면 엄청나게 가벼운 방탄조끼를 짜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거미를 대량으로 기르는 것은 어렵다. 많은 거미를 한데 모아놓으면 서로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더구나 거미가 거미줄을 뽑게 하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다. 4m 정도의 천을 짤 거미줄을 뽑아내려면 82명이 거미 100만 마리로 수년간 작업해야 한다. 루이스는 거미줄을 만드는 거미의 DNA를 염소와 접목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 결과가 바로 거미염소 프레클스Freckles 다. 프레클스는 생긴 건 염소지만 젖에서 거미줄을 분비한다. 루이스 연구팀은 지금 연구실 안에서 프레클스에게 짜낸 젖으로 거미줄을 뽑아내고 있다?
유전공학은 실재하는 키메라를 만들어내는 데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전공학은 거미염소를 비롯해 인간의 인슐린을 만들어내는 세균, 해파리의 유전자를 내포해 빛을 내는 물고기와 돼지 그리고 세계 최초의 유전자 이식 개로 말미잘 유전자 때문에 자외선을 쐬면 적색으로 빛나는 러피 더 퍼피 Ruppy the Puppy 등을 만들어냈다.
인간의 신경망은 자연계에서 얻은 지식의 실을 짜는 데 능하다. 아티스트 요리스 라만은 인간의 골격 발달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소프트웨어로 <뼈 가구 Bone Furniture>를 만들었다. 인간의 골격이 골질량 분배를 최적화하듯 라만의 가구도 보다 큰 무게를 견뎌야 하는 곳에 더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
인간이 섞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우리가 현재에 과거를 합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는 30년 전으로 돌아가 어쩌다 자기 부모가 만나는 걸 방해하는 바람에 자칫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할 상황에 빠진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에서 행크 모건은 예기치 않게 중세 시대로 돌아가는데 거기에서 그의 엔지니어링 노하우는 마술처럼 여겨진다. 또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소설 <천둥소리 A Sound of Thunder>에서는 한 사냥꾼이 인간이 지구 위를 돌아다니기 한참 전인 쥐라기 시대로 되돌아가 거기에서 무심코 나비 한 마리를 밟았다가 미래의 모든 것이 바뀐다. 이처럼 우리의 상상력 속에서는 서로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면이 빈틈없이 결합하고 있다.
인간의 뇌가 서로 다른 개념을 섞는 걸 좋아한다는 것은 의사소통 방식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즉 언어에도 많은 단어 섞기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의 rainbow(무지개), eyeshadow(아이섀도), braintrust(두뇌 집단), heartthrob(심장의 심한 고동), newspaper(신문), frostbite(동상), soulmate(소울메이트) 등이 좋은 예다.
아이들은 부모가 섞어 쓰는 언어를 모국어로 받아들여 자신만의 문법을 만든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라이트 왈피리어로 이 새로운 언어에는 세 가지 원천어에 속하지 않는 혁신적인 말도 섞여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단어인 'you'm'은 미래가 아닌 현재와 과거 모두에 속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이는 부모의 언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의 뇌가 계속 경험의 원재료를 리메이크하면서 이 마을의 언어는 진화하고 있고 전통 언어는 뒤섞인 언어로 대체되고 있다.
인간의 뇌는 종종 많은 자원을 한꺼번에 섞는다. 중세 시대 유럽 작곡가는 서로 다른 텍스트를 동시에 노래하는 보컬 작품을 작곡했다. 때로 서로 다른 언어를 섞기도 했다. 라틴어로 된 키리에 Kyrie (가톨릭에서 미사때 부르는 짧은 찬송가 - 옮긴이) 하나와 세속적인 프랑스어를 합한 유명 작품도 있다. 이 작품의 첫 번째 보컬 파트에서는 성가를 부르고 두 번째 파트에선 5월의 진정한 사랑을 찬미하며, 세 번째 파트에서는 이중 결혼을 한 자들에게 교황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불평하라고 경고한다.
그로부터 500년 후 음악의 섞기는 힙합 장르에 살아남았다. 힙합은 과거 음악의 노랫말과 멜로디, 후크Hooks, 리프Riffs 등을 수정해 섞으면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닥터 드레의 1992년 히트곡 〈렛미 라이드Let Me Ride>는 소울 가수 제임스 브라운의 드럼 패턴과 R&B 밴드 팔러먼트의 보컬, 힙합 래퍼 킹 티의 음향 효과를 섞어 썼다' 한 가지 리프가 음악 문화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1960년대 밴드 더윈스턴스의 드럼 솔로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부터 제이 지까지 수많은 뮤지션의 1,000개가 넘는 곡에 섞여 들어갔다.
가끔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섞기로 비약적인 기술 발전을 이루기도 한다. 사진은 대개 한 가지 조리개 설정으로 촬영해 정해진 양의 빛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노출이 부족하고 또 어떤 부분은 노출이 과하다. 만일 당신이 창문 앞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찍을 경우 쏟아져 들어오는 빛 때문에 어머니 쪽은 컴컴해진다. 그렇지만 하이 다이내믹 레인지 HDR 방식으로 사진을 찍으면 모든 것이 적절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디지털카메라의 경우 같은 장면을 아주 빠른 속도로 찍되 조리개를 모두 다르게 설정해 각기 다른 양의 빛을 받아들인다. 그 결과 사진들 가운데 일부는 노출이 부족하고 일부는 과하며 일부는 그 중간 쯤이 된다. 이때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여러 사진을 결합해서 최적의 국소 대비를 이끌어낸다. 최종 사진은 서로 다른 사진을 섞어 합친 것으로 흔히 실물보다 더 실물 같아 보인다고 한다. 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다른 노출을 잘 섞은 결과다.
큰 데이터는 크게 섞는다. 당신이 구글 번역기에 어떤 단락을 타이핑할 경우 컴퓨터는 당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 타이핑한 내용과 방대한 분량의 기존 번역 데이터베이스를 비교해 단어 대 단어, 구절 대 구절 식으로 가장 근접한 번역을 찾는다. 물론 번역 소프트웨어는 사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번역을 일종의 통계로 활용할 뿐이다. 즉 컴퓨터는 당신의 글에 관심이 없으며 그 글을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의 짜깁기로 본다. 르네상스 시대 다성 음악에서는 텍스트 섞기를 직접 들을 수 있으나 구글 번역기에서는 그런 텍스트 섞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자원을 좀 더 철저하게 섞는 경우도 있다. 아티스트 크레이그 월시가 나무 위에 인간의 얼굴을 투사해 만든 작품인 <공간 창조자>, 엘리자베스 딜러와 리카르도 스코피디오의 ‘블러 빌딩’ 등이 좋은 예다. 블러 빌딩은 반은 건물이고 반은 구름인 건축물로 수천 개의 물 분사기를동원해 수증기 장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양한 섞기 스펙트럼의 끝부분으로 가면 자원을 구분하는 게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미국 화가 재스퍼 존스의 <0에서 9까지 0 Through 9>를 보면 0에서 9까지의 숫자가 서로 중복돼 있음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섞기는 인류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지금으로부터 1만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인은 구리를 캐내기 시작했다. 몇천 년 후 그들의 자손은 주석을 캐냈는데 두 금속 모두 단단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두 금속을 한데 섞을 경우 연철보다 단단한 청동 합금이 된다. 기원전 2,500년경 의도적으로 섞은 최초의 물건이 탄생했고 이 시기에 나온 청동기는 천연구리 광석보다 주석 밀도가 더 높았다. 그처럼 구리와 주석을 섞어 동전, 조각, 자기, 무기나 갑옷을 널리 제작하면서 청동기 시대가 열렸다. 청동은 자기 혈통을 숨기고 있는 혼합물로 부드러운 두 금속이 합쳐져 이토록 내구성 강하고 금빛 광택이 나는 합금이 생겨나리라고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청동 합금과 마찬가지로 합성물, 약제로 쓰는 물질인 팅크처 Tinctures, 물약, 묘약 등은 모두 여러 가지 자원을 섞어 만든 물질이다. 1920년 향수 디자이너 어네스트 보는 장미, 재스민, 베르가모트, 레몬, 바닐라, 백단 등 수십 가지 자연 진액에 처음 알데히드라는 합성 향을 섞었다. 그는 서로 다른 향을 섞어 만든 향수가 담긴 병에 번호를 붙여 늘어놓은 뒤 사장 코코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고 했다. 그녀는 일일이 모든 향수 냄새를 맡아본 뒤 다섯 번째 병을 골랐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향수 '샤넬 넘버 5'는 그렇게 탄생했다.
뇌는 늘 경험을 저장한 창고 안을 돌아다니며 종종 널리 퍼진 연결망으로 각종 아이디어를 연결한다. 미국이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할 무렵 삽화가 노먼 록웰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 나오는 '예언자 이사야' 그림에 현대 산업과 점증하는 여성의 힘을 섞어 새로운 인물 <리벳공 로지 Rosie the Riveter>를 만들었다. 이와 관련해 인지과학자 마크 터너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생각은 광대한 시간과 공간에 걸쳐 뻗어 있으며 (…) 인간의 생각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르고 그 모든 것 간의 연결을 찾아내며 그 모든 것을 섞는다."
우리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 데서 섞기가 일어난다는 것을 모르지만 실은 지식 교류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세 유체 검사는 의학적 진단의 초석이다. 이는 혈액 샘플을 특수 제작한 접시 위의 조그만 홈에 나눠 넣은 뒤 각 채널에서 서로 다른 병원균 검사를 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검사 장비는 제조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들어 개발 도상국이 이용하기 어렵다. 부담이 더 적은 대안을 찾던 생물 의학 공학자 미셸 카인 연구팀은 슈링키 딩크스shrinky Dinks 라는 놀랄 만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이 장난감은 예열하면 아이들이 그림을 그려도 좋을 정도의 크기로 늘어나는 플라스틱 시트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트에 다시 열을 가할 경우 원래 크기로 줄어들어 아이들의 작품이 귀여운 미니어처로 변한다. 카인 연구팀은 레이저 제트 프린터와 토스터로 슈링키 딩크스 안에 홈을 파는 방법을 찾아냈고, 열을 가해 플라스틱 시트를 축소해서 쓸 만한 미세 유체 검사 접시를 만들었다. 시트당 얼마 안 되는 비용으로 장난감을 혈액 검사 장비로 바꿔버린 셈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연구할 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하나의 사고실험을 했다. 승강기를 지상에 설치할 경우 그 안에서 공을 떨어뜨리면 중력 때문에 공이 바닥에 떨어진다. 그럼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 위로 치솟는 승강기 안에 있다면 어찌될까? 손에서 공을 놓는 순간 지상 승강기 안과 똑같은 방식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공이 중력의 영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바닥이 공 쪽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할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공이 중력 때문에 떨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가속도로 인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그의 등가 원리 Equivalence Principle는 중력을 일종의 가속도로 취급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아인슈타인은 승강기와 천체 아이디어를 섞어 뜻밖에도 물리적 원리를 터득했다.
전혀 다른 아이디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섞기는 혁신의 강력한 추진력이다. 동물의 왕국에서는 성적 결합으로 다양한 종이 탄생하지만 그 결합은 늘 같은 시기에 살아 있고 유전학적으로 비슷한 동물 파트너 간의 결합이라는 제한을 받는다. 반면 인간의 마음은 수많은 기억과 감정이 우글대는 거대한 정글과 같아 아이디어 간의 결합에 제한이없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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