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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science Book/Creativity

불확실성 앞에 무릎을 꿇은 혁신들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19. 10:30

1865년부터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세계 공통어를 만들기 위한 시도는 수백 차례나 있었다. 배우기 쉽고 자연어의 어려움도 모두 해결해줄 '완벽한' 언어를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 엘리너 루스벨트를 비롯한 많은 고위 인사가 세계 공통어가 세계 평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노력을 지지했다. 그 결과 아울리 에스피도, 에스페리도, 유로팔, 유로페오, 지오글롯, 글로바코, 글로사, 홈 이디오모, 이도, 일로, 인터링구아, 이스피란투, 라티노 시네 플렉시오네, 문데린그바, 몬드린그보, 몬드린구, 노비알, 오시덴탈, 페르페크트스프라셰, 심플로, 울라, 유니버살그롯, 보라푸크 같은 다양한 이름의 언어가 등장했다. 거의 다 유럽 언어에 뿌리를 둔 이들 언어는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졌고 철자와 문장 구성이 보다 논리적이며 불규칙 어미가 없었다.


Esperanto


하지만 에스페란토어 Esperanto 창시자 루드비크 라자루스 자멘호프만큼 국제 공통어의 이상에 바짝 다가간 이는 없었다. 에스페란토어에는 각 글자에 1가지 음만 있다. 또한 모든 동사는 똑같은 형태로 활용하며 어휘 수는 예측 가능한 의미가 있는 접두사와 접미사를 붙이는 방식으로 늘어난다. 예를 들어 접미사 'eg'는 더 크거나 강하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vento'는 바람, 'ventego'는 강풍이고 'domo'는 집, ‘domego’는 대저택이다.

처음에 에스페란토어는 자멘호프와 그의 미래 아내 둘만 쓰던 언어였다. 서로 에스페란토어로 연애편지를 썼던 것이다. 그러다 자멘호프가 에스페란토어를 소개하는 논문을 발표한 뒤 많은 추종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에스페란토어 국제회의도 열렸다. 1908년에는 네덜란드와 프로이센의 작은 영토인 중립 모레스네Neutral Moresnet 가 처음 자유 에스페란토 국가 아미케조Amikejo ('우정의 장소'라는 뜻)로 개명하면서 에스페란토어 확산 운동에 불을 댕겼다. 에스페란토어 확산 운동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속도가 붙어 50만 명이 에스페란토어를 공식 세계 공통어로 채택해달라고 UN에 청원했다. 1948년 에스페란토어 지지자들은 "에스페란토어는 모든 폭풍우에도 꿋꿋이 살아남았고 세월의 시험도 잘 견뎌냈으며 (…) 이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언어가 되어 (…) 훨씬 더 큰 규모로 쓰일 준비를 갖췄다"라고 선언했다.

이 선언이 나온 때가 에스페란토어 전성기였다. 새로운 언어를 향한 열망은 점차 식어갔고 어떤 나라도 에스페란토어를 모국어나 제2외국어로 택하지 않았다. 현재 어린 시절부터 에스페란토어를 모국어처럼 배우는 사람은 1,0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전 세계가 서로 연결된 오늘날 세계 공통어를 쓰면 세상이 더 풍요로워지겠지만 사람들에게 낯선 언어를 새로 배우라고 하는 건 너무 큰 요구였다. 분명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세계 공통어는 너무 급격한 변화인 탓에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다른 많은 조치도 급격하게 시도했다가 도중에 실패로 끝났다. 달력 제도를 생각해보자. 1582년 그레고리 교황이 그레고리력을 도입한 이래 많은 사람이 날짜와 계절을 헤아리는 더 좋은 방법을 채택하려 로비를 벌여오고 있다. 어쨌든 각 달의 길이가 같아 매년 재사용이 가능한 달력이 있으면 더 좋지 않겠는가. 1923년 그레고리력을 폐기하자는 목소리가 커지자 국제 연맹은 전 세계적인 새로운 달력 공모를 후원했다. 최종 선정작은 모세 코츠워스가 디자인한 영구적인 13개월짜리 달력이었다. 코츠워스의 달력은 모든 달이 28일이고 새로운 해는 늘 일요일에 시작된다. 태양을 기려 'Sol'이라 이름 붙인 13번째 달은 6월과 7월 사이에 들어간다. 이스트먼 코닥의 설립자 조지 이스트먼은 코츠워스 달력의 열렬한 지지자로 60년 넘게 이 달력을 자사의 공식 시간표로 삼았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 독립 기념일인 7월 4일이 'Sol 17일'에 해당한다는 데 불만을 품고 국제 연맹의 계획에 반기를 들었다. 결국 여러 해에 걸친 로비에도 불구하고 코츠워스 달력을 국제 표준으로 삼자는 제안은 1937년 폐기됐다.

그로부터 몇십 년 후 엘리자베스 아켈리스가 영원히 변치 않는 12개월짜리 세계력을 제안했다. 365일을 7로 나누면 52주 364일로 365일에서 하루가 모자라는데, 그 하루를 1년의 마지막에 두고 특별한 요일이 없는 '세계의 날'로 정하면 매년 1월 1일은 변함없이 일요일에 시작된다. 이때 종교 단체들이 마지막 하루 때문에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예배 주기가 어그러진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국제연합은 세계력을 비준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각종 제안이 계속 이어졌다. 공상 과학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세계 계절 달력을 제안했다. 그 달력은 달을 다 없애고 1년을 사계절로 나눈 뒤 다시 한 계절을 13주씩으로 나누었다. 세계력과 마찬가지로 1년의 마지막 날은 추가적인 날로 두었다. 아이브 브롬버그의 대칭 454 달력은 28일 또는 35일로 이뤄진 달이 있었고, 5년 내지 6년마다 12월에 윤년이 아닌 윤주를 추가했다.

이들 새로운 달력은 그 나름대로 추종자가 있었으나 세계 공통어와 마찬가지로 결국 다 채택되지 않았다. 극복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은 탓이었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화한 오늘날 단계적인 변화는 불가능하다. 사실상 모든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새로운 달력을 채택할 경우 역사적인 기념일도 재계산해야 하고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를 위해 두 가지 달력 체계를 다 배워야 한다. 한마디로 그레고리력이 안고 있는 문제보다 그걸 다른 달력으로 바꾸었을 때의 불편이 훨씬 더 크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수영복 모델이나 상체를 드러낸 소방관이 등장하는 르네상스 시대 교황이 만든 달력을 여전히 쓰고 있다.

급격한 변화는 해당 분야에 혁신을 일으키지만 지도에 나오지 않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가령 세계가 기후 변화의 위험과 화석 연료 고갈에 직면하면서 자동차 업계는 재래식 엔진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느냐(점진적 해결) 아니면 전기 엔진이나 수소 엔진 같은 다른 기술로 대체하느냐(급격한 해결)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전기 자동차의 한 가지 단점은 충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현재 전기 자동차 충전 시간은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넣는 시간보다 수십 배 더 길다.

'Better Place' Business Model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터 플레이스 사가 배터리 교체라는 새로운 해결책을 들고 나왔다. 배터리 충전소에 차를 몰고 가면 몇 분 만에 다 쓴 배터리를 새것으로 교체해주는 시스템이다. 이 회사는 이상적인 시험장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했다. 나라 규모도 작고 환경 문제에 국민의 관심도가 높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정부의 후원 아래 베터 플레이스는 이스라엘 전역에 1,800개의 충전소를 세우고 영업을 시작했다. 전기 자동차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여건은 마련한 셈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일반 대중의 타성을 깨는 건 힘든 일이었다. 대규모 홍보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구매자는 아직 전기 자동차를 살 단계에 이르지 않았던 것이다. 베터 플레이스는 충전소 운영에 필요한 만큼의 전기 자동차 매출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결국 위풍당당하게 등장한 지 16년 만에 파산 신청을 했다.

우리는 예측 가능한 일과 깜짝 놀랄 일 사이에서 끝없이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간다. 이미 잘되고 있는 것에 집착하면 환영받지 못하고 편안한 것을 버리고 너무 멀리 가면 추종자를 찾지 못한다. 우리는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이상적인 절충점이라는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동안 수많은 아이디어가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는데, 이는 표적이 멀어 화살이 미치지 못하거나 아니면 훌쩍 넘어갔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8로 업데이트했을 때 너무 멀리 나갔다는 비난을 받았고 반응이 나빠 개발자들이 해고되었다. 반면 애플의 업데이트는 너무 안전 위주라는 비난을 받았다. 조이스 캐롤오츠의 말처럼 창의성은 늘 실험이다.

문화적 취향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항상 꾸준한 걸음으로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기어가고 가끔은 뛰어간다. 나아가는 방향도 언제나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다. 에스페란토어 세계화가 이루지 못한 소망으로 남아 있고 블록버스터 대여점이 기억에서 사라진 것도 그 때문이다. 어떤 시도가 성공적인 터치다운으로 이어질지는 확실치 않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