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roscience Study
변화의 흐름 앞에 머뭇거린 대가 본문
익숙한 것에 걸맞은 작품을 만들지 아니면 새로운 지평을 열 작품을 만들지를 놓고 겪는 딜레마는 수없이 되풀이된다. 적절한 지점을 찾는 과정에서 창작자는 익숙한 것 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다. 사회 구성원이 이미 알고 좋아하는 것을 택하는 게 아무래도 더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 쪽으로 나아가는 데는 위험이 따르며 사람들이 당신을 내버려둔 채 그냥 가버릴 수도 있다.
스마트폰 블랙베리를 생각해보자. 2003년 기술기업 림 RIM은 최초의 블랙베리를 선보였다. 이 스마트폰의 주요 혁신은 완전한 쿼티 QWERTY 키보드로 이로써 전화 통화는 물론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도 가능했다. 블랙베리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면서 2007년 림의 주가는 8배나 뛰었고, 이 회사는 첨단 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그해에 애플이 처음 아이폰을 선보였다. 블랙베리의 시장 점유율과 주가는 한동안 계속 오르면서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대중의 관심은 터치스크린 전화기 쪽으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베리는 아이폰이 일시적 유행이길 바라며 계속 같은 디자인을 고수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이 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75%나 떨어졌고 최고 138달러까지 올라갔던 주가는 6달러 30센트로 폭락했다.
블랙베리가 저지른 실수는 무엇일까? 그들은 전화기가 무서운 속도로 멀티미디어 기기로 진화하고 있다는 걸 과소평가한 채 너무 오래 정답에만 매달렸다. 블랙베리는 키보드로 인해 화면 크기가 제약을 받았고 그 탓에 영화를 보고 각종 앱을 즐기는 즐거움에 한계가 따랐다. 2007년까지만 해도 통하던 것이 몇 년 만에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저런 조치가 다 먹히지 않으면서 결국 림은 주저앉았다.
이스트먼 코닥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조지 이스트먼은 1885년 최초로 신축성 있는 롤필름을 발명했다. 1970년대 중반 이스트먼 코닥은 미국에서 전체 필름 매출의 무려 90%, 카메라 매출의 85%를 차지했다. 미국인이 찍는 사진 10장 중 9장은 코닥 필름으로 찍은 것이었다. 그러나 자사의 아날로그 필름 매출이 잠식당할 것을 우려한 이스트먼 코닥은 디지털 기술 발전 앞에서 지나치게 머뭇거렸다. 자체적으로 디지털카메라 제품을 내놓긴 했지만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얼마나 빨리 아날로그 기술을 대체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사진 업계 창시자나 다름없는 이스트먼 코닥은 결국 2012년 파산 신청을 했다.
대담한 혁신으로 업계를 선도한 기업이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뒤처지는 일은 아주 흔하다. 2000년만 해도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집에서 영화를 보고 싶을 경우 동네 '블록버스터' 매장을 찾았다. 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설립한 이 비디오 대여 체인점은 업계 최초로 비디오 대여 추세 모니터링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가장 인기 있는 비디오의 재고를 늘 충분히 유지했다. 블록버스터는 한창때 전 세계적으로 체인점 수가 1만 1,000개를 넘었다. 그러나 블록버스터는 각 가정에서 비디오를 직접 스트리밍하게 해주는 광대역 통신망 출현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결국 2014년 미국의 마지막 블록버스터 매장이 문을 닫았다. 그렇게 소매점에서 영화를 대여해주는 일은 과거의 유물로 남았다. 블랙베리, 코닥과 마찬가지로 블록버스터는 너무 오래 정답에만 매달려 있었다.
실패한 기업에 근무했던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꾀하려면 남보다 빨리 성공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사람들의 상상력을 지속적으로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전등은 가스등을, 자동차는 마차를, 유성 영화는 무성 영화를, 트랜지스터는 진공관을, 데스크톱 컴퓨터는 대형 컴퓨터를 대체했다. 그렇다고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는 게 열쇠라는 말은 아니다.
언젠가 셰익스피어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17세기 극작가 벤 존슨은 동시대 사람 셰익스피어를 가리켜 “한 시대가 아닌 모든 시대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긴 힘들다. 셰익스피어의 인기는 예전보다 지금이 더 높으니 말이다. 2016년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은 무려 196개국에서 <햄릿> 공연 기록을 세우며 월드 투어를 마쳤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지속적인 리바이벌과 재해석 대상이다. 세계 곳곳의 교육받은 많은 성인이 그의 희곡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인용한다. 셰익스피어는 인류가 자랑스레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일종의 유산인 셈이다.
여기서 잠깐, 만일 500년 후 우리가 신경 이식 장치에 전원을 연결해 다른 누군가의 감정에 직접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어찌될까? 뇌와 뇌를 연결하는 깊이 있는 경험으로 엄청나게 큰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가능해져 무대 위의 3시간짜리 연극을 보는 것이 역사적 관심사가 될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 희곡의 등장인물 간에 벌어지는 갈등이 너무 고리타분해 보여 우리가 유전 공학이나 복제, 영원한 젊음, 인공지능 등의 플롯을 원한다면 어떨까? 정보를 과다 제공해 인류가 더 이상 한두세대 또는 1~2년 이상 뒤돌아볼 수 없으면 어떨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광고 전단이 사라지는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지칠 줄 모르는 우리의 상상력 덕에 지불해야 할 대가인지도 모른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바뀌고 사회는 계속 발전해간다. 우리는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지를 만든다. 문화가 신성시하는 창작품마저 스포트라이트 밖으로 밀려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 유럽에서 가장 위대하고 박식한 작가였다. 우리는 지금도 그를 존경하지만 그것은 살아 있는 목소리보다 상징적 존재로서의 존경이다. 창의력을 발휘한 산물에 관한 한 '불멸'에는 대개 유통기한이 있다.
아마 셰익스피어는 완전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의 희곡이 전문가의 전유물로 남을지라도 셰익스피어는 그 문화 DNA 속에 계속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불멸 측면에서 그 정도면 족할 수도 있다.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하는 인간의 속성을 감안하면 어떤 창작품이 5~6세기 동안 살아남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엄청난 것을 이룬 셈이다. 우리는 현대에 창의적인 삶으로 조상들을 영광스럽게 만들고 있다. 설사 그 삶이 서서히 과거를 지우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자기 시대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모든 시대의 마지막 극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지금도 그에게 영감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들려온다.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모든 남자와 여자는 (배우이며)(…) 나가고 또 들어올 것이다"라고 썼지만 언젠가 그 역시 역사의 무대 뒤로 물러날지 모른다. 비영구성과 진부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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