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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science Book/Creativity

안개 속으로 한 걸음 더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20. 10:00

19세기 말 뉴욕과 시카고 같은 도시는 옆으로 계속 확대되었고 위로도 더 올라갔다. 도시 전역에서 고층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함께 이동을 위해 승강기가 등장했는데 초기 모델은 증기나 유압으로 작동해 느리고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웠으며 가격이 비싼 데다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 전기가 보급되면서 미국 발명가 프랭크 J. 스프래그Frank J. Sprague가 돌파구를 찾았다. 물론 전기 승강기를 처음 만든 건 그가 아니었고 이미 10년 전에 한 독일 기업이 원시적인 형태의 승강기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스프래그는 그 초기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상업적으로 이용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스프래그와 그의 동료는 대도시 고층 빌딩에서 승객을 오르내리게 해줄 전기 승강기 제작 관련 특허를 냈다.

 

Frank J. Sprague


그러나 당시 승강기 공사 시장은 뚫고 들어가기가 아주 힘든 분야였다. 유압식 승강기 제작업체인 오티스 엘리베이터가 모든 공사 현장에서 실질적인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프래그는 자신의 전기 승강기가 유압식 승강기보다 더 성능이 뛰어나다고 광고했으나 건설업자들은 입증되지 않은 기술을 채택하려 하지 않았다. 스프래그는 오티스 엘리베이터에 도전하려면 자신이 위험을 상당 부분 떠안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전기 승강기를 설치할 건물을 찾아 나선 그는 뉴욕에 건설할 예정인 14층짜리 우편 전신 빌딩 건설을 맡은 건설업체 중 자신과 손잡고 일할 의향이 있는 사람을 물색했다. 그는 승강기 여섯 대 설치 계약을 놓고 그들과 협상했다. 계약 조건은 건설업자에게 유리했고 스프래거는 계약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 계약을 최종 확정하는 단계에서 불리한 조건까지 받아들였다. 자신이 설치한 승강기가 약속한 만큼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무료로 유압식 승강기로 교체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스프래그는 밤낮 없이 부품을 설계하고 제조하고 테스트하는 한편 필요한 비용을 대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어렵사리 투자자를 확보했으나 금융 공황이 발생하면서 투자 약속은 취소되었다. 스프래그는 자기 돈을 회사에 긴급 투입해 가까스로 파산을 막았다.

마침내 첫 번째 승강기 설치를 끝냈을 때 스프래그는 회사 직원들을 데려가 첫 운전을 시도했다. 승객이 지하실에서 탑승하자 문이 닫히고 지시대로 승강기는 위로 올라갔다. 1층, 2층, 3층을 지나 드디어 꼭대기 층까지 거의 올라갔을 때 스프래그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승강기 속도가 줄지 않았던 것이다. 승강기는 꼭대기 층을 지나 계속 올라갔다. 미래 승강기의 선구자가 되려는 문턱에서 스프래그와 그의 직원들은 곧 지붕을 뚫고 하늘로 솟아오를 판이었다.

 



뇌는 안전한 것을 놀라운 것으로, 익숙한 것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대체할 때 창의성이 극대화된다. 하지만 그러한 정신적 도약에는 '그만큼 더 위험해진다'는 대가가 따른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는 그 결과를 확신할 수 없다.

스프래그가 모든 것을 걸고 위험을 감수한 건 승강기 사업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보다 몇 년 전 그는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시의 한 언덕 아래서 전기 전차 시운전을 앞두고 절망을 맛보았다. 최초의 전차는 철로에서 전력을 끌어오느라 객실에 커다란 전기 모터를 장착했고 그 때문에 승객은 비좁은 객실 안에서 찜통 여행을 해야 했다. 스프래그는 모터를 열차 바닥으로 옮겨 객실을 비우고 철로 위쪽에 늘어뜨린 전깃줄로 전력을 공급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A drawing from Electrical World magazine illustrating a slightly later version our newly-acquired 1884 Sprague motor


스프래그의 초기 결과는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다. 시운전 때 한 모터에서 불꽃이 일어났고 투자자들은 놀라 펄쩍 뛰었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겁을 먹은 일부 투자자는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흥정할 기회라 여긴 일부 사업가는 그에게 90일간 20km에 걸쳐 철로를 깔고 전차 40대를 제작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더구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때만 돈을 지불한다는 조건이었다.

스프래그는 자신이 너무 무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훗날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차에 쓸 수 있을 만큼 많은 모터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거라곤 기계 설계도와 조악한 실험 장치뿐이었고 101가지에 이르는 필수 부품의 세부 사항은 아무것도 결정된게 없는 상태였다.”

그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험난했다. 한창 철로를 놓고 있을 때 스프래그는 장티푸스에 걸렸다. 질병에서 회복한 뒤 현장에 가보니 철로를 잘못 설치해 연결 부분이 느슨했고 급경사 구간은 사고 위험도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언덕들이 예상보다 더 가팔라 전차가 제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일도 난제 중의 난제였다. 자신의 전차가 그 가파른 언덕을 제대로 오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은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도록 밤에 몰래 시운전을 해보았다. 궤도차는 칙칙 소리를 내며 여러 언덕을 잘 올라갔으나 최정상에 이르러 그만 모터가 타버리고 말았다. 스프래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만히 있다가 몇몇 구경꾼이 돌아간 뒤 수리를 시작했다.

시계는 계속해서 째깍거렸고 그 흐름과 함께 돈이 말라갔다. 애초에 정한 마감 시한도 지나 스프래그는 재협상을 해야 했다. 투자자들은 그에게 계속 불리한 조건을 내걸었으나 그는 그걸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회사 문을 닫거나 둘 중 하나였다. 스프래그는 자금 담당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능한 한 줄일 수 있는 인력은 다 줄이고요. (···) 돈을 절약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절약하고, 당장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최대한 지불을 늦추세요.”

그는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어떤 돈도 절대 지불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Sprague's first M.U. installation was on Chicago's South Side Rapid Transit, 1897


스프래그의 전차는 마지막 마감 시한에 맞춰 칙칙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그는 절망스러울 만큼 힘든 상황에서 가까스로 성공을 거두었다.그렇게 불확실한 것에 뛰어든 그는 최초의 전차 시스템을 만들어 새로운 사업을 일으켰다.


그의 회사는 매주 4만 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고 그는 자신의 혁신에 지속성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스프래그의 전차 디자인 중 모터를 열차 바닥에 장착하고 전선을 머리 위에서 끌어오는 것처럼 중요한 아이디어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July 11, 1898. Brooklyn Union Elevated R.R. was another early adopter of Sprague's M.U. control. Car 400


스프래그의 전기 승강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시운전 중이던 우편전신 빌딩의 고속 승강기는 곧 하늘을 뚫고 날아오를 판이었다. 나중에 그는 당시 너무 두려워 식은땀이 났다고 말했다.

“그때 분당 약 120m 속도로 머리 위 도르래 쪽으로 날아올라 (···) 케이블이 끊기면서 14층 높이에서 그대로 떨어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사람들과 금속이 뒤얽힌 사고 현장을 검시관이 조사하는 모습도 말이다.”

다행히 스프래그의 직원 중 1명이 승강기에 타지 않고 밑에 남아 있었다. 승강기가 통제 불능 상태로 올라가는 것을 본 그는 곧바로 마스터 스위치를 꺼 승강기를 멈춰 세웠다. 스프래그는 승강기에 아무도 오르지 못하게 한 뒤 혼자 자동 안전장치를 설치했다.

그런 공포를 경험하고도 그는 굴하지 않고 일을 밀어붙였다. 동시에 재정적 압박은 더 심해졌고 많은 부품을 조달하느라 예상 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야 했다. 마침내 그는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의 승강기 시스템이 사전에 광고한 내용 그대로 작동했던 것이다. 그 직후 스프래그는 한 금융업자에게 편지를 썼다.

“정말 열심히 일했고 믿음도 굳건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힘든 일이 참 많았지요. 기술 측면에서는 성공했고 만약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으면 모든 면에서 성공할 것 같습니다."

창의력과 큰 위기에 강한 스프래그는 결국 전기 승강기 제작에 성공했고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승강기는 거의 다 그의 디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