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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science Book/Creativity

대중의 외면이 주는 메시지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21. 10:00

아폴로 13호가 산소 공급이 점점 줄어드는 상태로 우주 공간을 날아갈 때, NASA의 관제 센터 총책임자 진 크란츠는 엔지니어들에게 “실패는 옵션이 아닙니다"라고 선언했다. 그 구조 작전은 성공했으나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 해서 그들이 커다란 위험에 처했었다는 사실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 실패는 늘 하나의 옵션이다. 아무리 위대한 아이디어도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Michelangelo, The Last Judgement (1536~1541)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프레스코화를 그리고 나서 20년 후 미켈란젤로는 그 성당 제단 위 벽에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때 그는 교회의 전통을 무시한 채 그림에 성서적 우화와 그리스 신화를 뒤섞었다. 기독교의 지옥 묘사에 뱃사공 카론Charon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신 - 옮긴이)이 죽은 자들을 배에 태워 하데스 강을 건너는장면과 미노스Min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후 명부의 심판자. - 옮긴이) 왕이 죽은자들을 심판하는 장면을 넣은 것이다. 또한 그는 기독교 전통에서 한참 벗어나 여러 인물의 성기를 그대로 노출했다.

이 거대한 프레스코화는 즉각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림 공개 직후 만토바의 한 특사는 추기경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이렇게 썼다.

추기경님이 상상하실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비난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테아티니 수도 참사회 분들이 처음 언급한 것처럼 그렇게 성스러운 장소에 '음부를 다 드러낸' 나체화라니, 이건 옳지 않습니다.


바티칸궁의 한 보좌관은 교황 바오로 3세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

 

“교황님의 성당이 아니라 술집에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추기경들은 회반죽을 칠해야 한다며 로비까지 했다. 교황은 미켈란젤로 편이었으나 이후 열린 트리엔트 종교 회의는 이 작품의 부적절한 전시를 금지했다.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뒤 이 프레스코화에 나오는인물의 성기는 천 조각이나 무화과 나뭇잎으로 덧칠했고 이후에도 몇세기 동안 더 많은 무화과 나뭇잎을 추가했다.

20세기 말 <최후의 심판> 복원 작업을 진행하면서 일부 무화과 나뭇잎을 제거했다. 성기가 드러나자 죽은 자들 가운데 한 남자는 여자로 밝혀졌다. 복원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이 프레스코화가 성기를 가린 나뭇잎 때문에 손상되기도 했지만 그림이 살아남는 데 도움도 준 듯해 원래의 나뭇잎을 그대로 두기로 결론지었다. 어쨌든 교회 관계자들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놓고 밀고 당기기를 하는 바람에 몇 세대 동안 이 성당을 찾은 사람들은 <최후의 심판>을 벌거벗은 상태 그대로 본 적이 없다.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도 미켈란젤로와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다. 1962년 네덜란드 중부 도시 힐베르쉼 당국은 도시 설립 400주년을 맞아 그에게 새로운 작품을 의뢰했다. 리게티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 100대의 메트로놈을 위한 곡을 썼다. 서로 다른 속도로 세팅해 동일한 횟수로 감은 각 메트로놈은 함께 소리를 내기 시작해 가장 빠른 것부터 느린 것 순으로 하나하나 멈추게 되어 있었다.

곡을 초연하던 날 공무원과 관계자가 400주년 축하 연주회를 듣기 위해 한데 모였다. 음악 연주가 시작되자 약속한 순간 턱시도를 걸친 리게티와 조수 10명이 무대 위에 나타났다. 작곡자의 신호에 따라 조수들은 메트로놈을 가동했고 각자 스스로 풀리도록 내버려둔 채 무대를 떠났다. 나중에 리게티는 연주가 끝난 뒤 벌어진 일을 들려주었다.

“마지막 메트로놈 소리가 끝나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어 여기저기서 항의조의 위협적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주에 리게티는 연주회 녹화 방송을 보기 위해 친구와 함께 자리에 앉아 있었다.

"TV 앞에 앉아 방영 예정이던 녹화 방송이 나오길 기다렸다. 한데 기대와 달리 미식축구 경기가 나왔다. 힐베르쉼 의회의 긴급 요청에 따라 방송이 금지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와 마찬가지로 리게티의 작품도 살아남았고 이후 몇 년 만에 전설적인 곡으로 부상했다.

 

Richard Serra, Tilted Arc (1981)


하지만 모든 작품이 살아남아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1981년 맨해튼의 한 연방 사무실 건물에 설치할 미술품을 의뢰받았을 때 리처드 세라는 널리 인정받는 화가였다. 그는 길이 36m, 높이 3.6m의 굽은 강철 조각인 <기울어진 호Tilted Arc〉를 제작했다. 광장 앞쪽으로 다니는 사람들의 통행을 저지할 목적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그런데 많은 주민이 광장을 빙 돌아서 다니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녹이 슨 금속 장벽'에 반대해 시위를 벌였고 약 200명이 공청회에 나가 증언을 했다. 동료 화가들은 세라의 입장을 옹호했으나 반대자들은 이 작품이 “위협적이고 쥐덫 같다"고 했다. 결국 세라가 법정까지 직접 나갔으나 증언이 끝난 뒤 배심원단은 4대1로 조각품 철거를 결정했다. 일상을 깨뜨리려 한 리처드 세라의 의도는 때와 장소 측면에서 광장을 가로질러 출퇴근해야 하는 바쁜 뉴요커들에게 맞지 않았다. 인부들은 <기울어진 호>를 조각조각 잘라 처리했고 그 작품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인류 문화 곳곳에는 대중에게 거부당해 망각 속으로 사라진 아이디어가 흩어져 있다. 지칠 줄 모르는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근면한 미국인이 얼마든지 더 값싼 피아노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값비싼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쓰는지 의아해했다. 그는 모든 중산층 가정에 음악을 보급하고 싶은 욕심에 저렴한 콘크리트로 만든 피아노를 디자인했다. 실제로 1930년대에 라우터 피아노가 그런 피아노를 몇 대 제작하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 피아노는 음질이 떨어졌고 무게가 1톤 가까이 나갔다. 자기 집 거실을 콘크리트 악기로 장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디어 수용은 통제가 불가능한 일이다. 창안자의 관점에서 아무리 위대한 아이디어도 역풍을 맞을 수 있다. 1958년 포드자동차는 실험적인 자동차 코드명 E-car를 개발했다. 이는 경쟁사 올즈모빌과 뷰익에 대항하기 위한 모델로 여기에는 미래 지향적인 기능이 많았다. 안전벨트는 기본이고 연료 고갈과 엔진 과열을 방지하기 위한 경고등, 기어 변속에 필요한 혁신적 푸시 버튼형 변속 장치도 장착했다. 포드자동차는 투자자들에게 이 모델의 성공은 보장되어 있다고 장담했다. 그렇지만 비밀리에 개발하느라 시장성 테스트도 거치지 못한 이 포드 에드셀 모델은 출시하자마자 자동차 역사상 가장 큰 실패작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차의 스타일링 특히 '변기처럼 생긴 그릴'은 많은 사람의 조롱거리였다. 이 모델로 인해 포드사는 단 3년 만에 3억 5,000만 달러 (현재 가치로 29억 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New Coke


몇십 년 후 경쟁사 펩시에 시장 점유율을 뺏기고 있던 코카콜라는 주력 음료를 새로 만들었다. 1983년 '최고가 더 좋아졌다'는 슬로건 아래 뉴코크New Coke 를 출시한 것이다. 불행히도 대중은 뉴코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역풍은 아주 거셌다. 회사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것은 물론 수신자를 '얼간이 왕 코카콜라'라고 적은 편지도 왔다. 시애틀에 사는 한 남자는 집단 소송까지 냈다. 심지어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까지 불만을 쏟아냈다. 뼈아픈 77일간의 고행 끝에 오리지널 코카콜라는 코크 클래식Coke Classic이란 이름으로 돌아왔고 뉴코크는 에드셀 모델이나 콘크리트 피아노의 전철을 밟았다.

모든 아이디어가 안전하게 착륙하는 건 아니다. 미켈란젤로와 리게티, 세라, 에디슨, 포드, 코카콜라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위험한 도박을 피하지 않았고 많은 성공도 누렸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