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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science Book/Creativity

창조는 끝없는 도전 속에 탄생한다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22. 10:00

옵션 다양화는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며 대부분 옵션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또 다른 절반이다. 영국의 분자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은 이렇게 말했다.

단 한 가지 이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목숨을 걸고 그 이론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크릭은 일단 많은 아이디어를 확보한 뒤 그 대부분을 포기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접근 방식이라고 했다. 그럼 산업 디자인의 일반적인 과정을 생각해보자. 컨티뉴엄 이노베이션 사는 피부 관리를 위한 레이저 장비를 디자인할 때 이상적이라고 보는 상품의 모습, 즉 전문적이고 세련되고 우아하고 쓰기 쉽고 스마트한 특성을 규정짓는 일부터 시작했다.이때 창의성 개발팀은 개인 아이디어 일지에 각종 아이디어를 스케치했다. 이어 각자 좋아하는 아이디어를 좀 더 자세히 그렸는데 그것은 진부한 아이디어부터 파격적인 아이디어까지 다양했다. 이런 과정이 이 회사에서 말하는 이른바 '아이디어 깔때기 Funnel of Ideas' 작업의 시작이었다. 이후 창의성 개발팀은 그 아이디어를 실현 가능한 몇 가지 옵션으로 추려냈다.

컨티뉴엄 이노베이션의 피부 관리용 레이저 장비 시제품

 

그 뒤 나머지 디자인을 미세 조정하고 시장 조사를 시작했다. 디자이너팀은 인터뷰 조사로 여성들이 레이저를 화재 위험 요인으로 보고 화상을 입지 않을까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그 사실로 레이저 장비가 의료 장비처럼 보여야 하고 안전장치를 내장하는 것은 물론사용이 편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결국 옵션의 수는 더 줄어들었다. 곧이어 테스터들이 사용해볼 수 있는 모델이 나왔고 소비자가 실제로 어떤 것을 살지 알아내는 구매 의도 테스트도 진행했다.

아이디어를 긴 깔때기로 걸러내는 과정을 거치면 확실한 승자가 나온다. 컨티뉴엄 이노베이션의 제품 개발 과정은 다양한 옵션을 만드는 데 의존했다. 창의성 개발팀은 여러 가지 대안을 찾은 다음 그 대부분을 내버렸다. 그만큼 최종 우승자를 찾아내려면 충분한 경쟁 상대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어떤 해결책이 승자가 될지 예측하는 건 쉽지 않으므로 평범한 것부터 급진적인 것까지 다양한 옵션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IDEO


현금 인출기가 설치된 초창기에 고객은 공공장소에서 돈을 인출하는 일을 왠지 위험하다고 느꼈다. 미국 은행 웰스 파고는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 아이데오에 도움을 청했다. 아이데오는 현금 인출기에 잠망경이나 비디오카메라같이 값비싼 장치를 부착하는 등 많은 아이디어를 시도해보았다. 그런데 그들의 최종 해결책은 지극히 평범했다. 트럭 운전기사들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어안 거울을 부착하기로 한 것이다. 그 거울로 현금 인출기 사용자는 뒤쪽 거리 전경을 한눈에 보면서 주변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웰스파고가 현금 인출기 위에 거울을 부착하는 정도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굳이 아이데오 같은 혁신 기업에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겠지만, 사실 아이데오는 서로 다른 거리로 날아가는 옵션 다양화로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낸 것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먼저 널따란 깔때기에 각종 아이디어를 집어넣는 일이다. 깔때기의 길이는 빠른 반복으로 짧아질 수도 있다. 구글 연구 개발 부서 X를 예로 들어보자. X는 새로운 제품을 활발하게 디자인하고 거르기 위해 홈Home팀과 어웨이 Away팀을 만들었다. 구글이 웨어러블 컴퓨터 구글 글래스 아이디어를 내놓았을 때 홈팀에는 신속하게 실용 모델을 만드는 임무가 주어졌다. 홈팀은 옷걸이와 값싼 프로젝터 그리고 스크린 보호 장치로 쓸 깨끗한 플라스틱 시트를 이용해 하루 만에 최초의 모형 구글 글래스를 만들었다. 어웨이팀의 임무는 쇼핑몰 같은 공공장소로 나가 잠재 고객에게 최대한 많은 피드백을 얻는 것이었다.

Google Glass


구글 글래스 초기 모델은 무게가 약 3.6kg으로 안경이라기보다 안전모에 더 가까웠다. 그 무게를 일반적인 안경보다 더 줄였을 때 홈팀은 그야말로 대박을 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어웨이팀이 무게를 더 줄여야 한다고 보고한 것이다.

사용자는 콧등에 많은 압력이 가해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홈팀은 구글 글래스의 무게를 콧등에서 귀로 옮기는 방법을 고안했다.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거르는 과정에서 구글 글래스 프로젝트팀은 여러 버전의 구글 글래스를 빠른 속도로 반복해서 만들었고 결국 2014년 제대로 작동하는 늘씬한 구글 글래스를 처음 시장에 출시했다.

그렇지만 구글은 이 버전조차 걸러냈다. 구글 글래스 아이디어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사생활 관련 문제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촬영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구글은 구글 글래스 프로젝트를 포기했으나 이는 구글 전체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 소속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는 다른 팀으로 가서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프로젝트에 활용했다. 구글이라는 나무에 열린 여러 열매 중 하나였던 구글 글래스는 최고 좋은 열매는 아니었다. 다행히 구글에는 다른 열매가 많았고 좋지 않은 열매를 버리는 데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아이디어를 낸 뒤 그 대부분을 버리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노력 낭비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 그것은 창의적인 과정의 핵심이다.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 대략적인 스케치나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데 쓰는 시간은 생산성 손실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직원들은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고 시장은 계속 변하므로 오히려 그것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식일 수 있다.

 

3M House of Brands


이와 관련해 3M은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거의 지난 세기 내내 이 다국적 기업은 매출의 3분의 1을 신제품과 최신 제품에서 올려 혁신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2000년 3M에 새로운 CEO가 취임했고 그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연구 개발 부서에 어울리지 않는 효율성을 강요했다. 제조 과정에나 적용할 수 있는 효율성은 연구 개발 과정에 여러 부작용을 불러왔다. 측정 가능한 수익률은 최고였으나 그 결과를 보면 이후 5년간 신제품 매출이 20%나 급감했다. 그 CEO가 나간 뒤 후임자가 족쇄를 모두 걷어치우자 연구 개발 부서는 다시 살아났고 이내 신제품이 3M 매출의 3분의 1을 채웠다.

 

Tata Motors


설사 옵션의 대부분이 막다른 길로 끝날지라도 옵션 다양화는 혁신에꼭 필요한 도약대다. 그래서 혁신적인 기업은 다양한 아이디어나 옵션 창출을 시간 낭비로 여기지 않는다. 가령 인도 기업 타타Tata는 비록 실패로 끝났어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과감한 도전' 상을 수여한다. 첫해에는 참가자가 세 명에 불과했으나 타타 직원들이 자신의 무모한 도전을 공개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참가자는 곧 150명까지 늘어났다.

구글 연구 개발 부서 X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상을 주는데 이는 실패로 끝난 것도 마찬가지다. X의 책임자 아스트로 텔러는이렇게 말했다.

나는 실수 없이 배울 수 있는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실패는 먼저 하면 그 대가가 작지만 마지막에 하면 아주 크다.

 

The Google Graveyard


구글 묘지에는 꿈을 펴보지 못하고 사라진 아이디어가 사방에 널려있다. 구글 웨이브(이메일보다 규모가 크고 더 복잡한 콘텐츠 공유 경험), 구글 라이블리(세컨드 라이프와 비슷), 구글 버즈(일종의 RSS 리더), 구글 비디오(유튜브와 비슷),구글 앤서(질문하고 답을 얻는 서비스), 구글 프린트와 라디오 광고(구글 브랜드를프린트와 라디오 광고 분야로 확대), 닷지볼(위치 특정 소셜 네트워킹), 자이쿠(트위터 같은 마이크로 블로그), 구글 노트북(구글 독스로 대체), 서치위키(구글 검색 엔진), 놀(위키피디아처럼 유저가 만드는 온라인 백과사전), 사이드위키(웹 주석 툴)가 그 대표적인 예다.

물론 실패를 희소식으로 여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실패는 불가피한 일보 후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함 있는 행동도 문제점을 해결할 경우 가끔은 최종 해결책에 더 가까워져 일보 전진처럼 여겨진다. 이것저것 시도한 뒤 거의 다 내버리므로 여기에는 '아이디어 투척 Idea Fling'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세계 어디서든 다양화와 선별은 발명의 기본이다. 결국 인류가 걷는 구불구불한 길은 우리가 떠올리는 많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따르기로 결정한 몇 안 되는 아이디어가 결정한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