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roscience Study

창의성을 끌어내는 업무 환경 본문

Neuroscience Book/Creativity

창의성을 끌어내는 업무 환경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23. 09:00

1958년 독일의 한 컨설팅 그룹이 혁신과 생산성을 가로막는 장벽을 무너뜨릴 목적으로 '자연 풍경 같은 사무실'이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는 사무실 책상을 탁 트인 상태로 정렬하고 통로를 정원 길처럼 만들어 사무실의 작업 흐름과 서류 이동 경로를 따라가게 만든 방식이다. 시각적으로 닫힌 문이 없고 칸막이 안에 갇힌 사람도 없으며 구석 자리에 앉아 모든 사람을 감시하는 듯한 경영진도 없는 사무실이 목표였다. 특정 구역을 가리고 직원을 분리하는 것은 몇몇 이동식 칸막이와 화초 등이 전부였다."

일부 예측에 따르면 현재 미국 기업의 70%에 개방형 사무실 계획이 있다고 한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애플도 거대한 비행접시 모양의 본사 건물 내 사무실을 직원 간의 유연한 협력을 위주로 배열할 예정이다.

“사무실을 개방적으로 배열할 것이다. 직원들이 오늘은 원형 건물 내이쪽 사무실에 있다가 내일이면 저쪽 사무실에 있을 수도 있다."

모든 회사가 다 이런 방식을 채택하는 건 아니다. 나일론을 발명한 화학 제품 회사 듀폰은 각기 다른 경비원이 지키는 독립적인 여러 부서로 나뉘어져 있다. 한때 동물 행동 연구소였던 팰로 앨토의 제록스 혁신센터는 예전에 '거주했던' 동물의 이름을 딴 독립 공간으로 분류했다. 레이저 프린터가 탄생한 곳은 '쥐 방rat room'이었다. 1950년대 제너럴 일렉트릭도 이같은 독립된 구조인 사일로 모델을 채택해 번성했고 1990년대 네슬레와 소니도 마찬가지였다. 소니의 혁신적인 제품 중 하나인플레이스테이션은 독립된 게임 부서에서 개발했다.

이들 회사는 잘못 선택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창의성을 높이는 방법은 늘 변하게 마련이다. 혁신적인 방법 그 자체도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 생산성을 높여주는 유일무이한 해결책이란 없다. 구소련 과학자들에게 구글의 개방형 사무실 같은 환경은 주어지지 않았다. NASA의 과학자들은 일할 때 트레이닝복 대신 바지와 셔츠에 넥타이를 맸다. 그러고도 그들은 우주까지 뻗어갔다.

개방형 사무실이 인기를 얻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개방형 사무실이 정답인 것은 아니다. 올바른 것은 변화 지향형 문화를 구축하는 것 자체다. 습관이나 관습은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들고 좋게 받아들여져도 지나치게 경직되면 혁신을 위협한다. 시대에 따른 사무실 배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답이 계속 변한다는 점이다. 직선으로 계속 발전해갈 것이라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1940년대(좌), 1980년대(중), 2000년대(우)


지난 80년간의 사무실 배치 계획을 살펴보면 반복되는 사이클이 보인다. 1940년대 사무실과 2000년대 사무실을 비교할 경우 사이클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1980년대에는 칸막이와 작은 방이 더 일반적이었다. 기술과 색상은 달라졌어도 1940년대와 2000년대 사무실은 사무실 중앙 여기저기에 기둥이 서 있는 등 그 모습이 비슷하다.

21세기 개방형 사무실 배치는 벌써 퇴조 조짐을 보이고 있다. 페이스북에 근무했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불만을 터뜨렸다.

“무료 음식과 음료는 잊어라. 사무실은 끔찍하다. 커다란 방에 피크닉 스타일의 테이블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15cm 정도의 여유를 두고 서로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다. 사생활은 아예 없다.”

《뉴요커》에 실린 <개방형 사무실의 덫The Open-Office Trap>이라는 기사는 끊임없는 소음과 사람 간의 불편한 접촉, 감기에 걸릴 위험 상승 등 개방형 사무실의 폐단을 길게 열거했다. 최근 개방형 사무실 배치를 비판하는 얘기가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사이클이 돌고 돌아 다시 폐쇄적이고 개인적인 사무실 배치로 되돌아가려는 게 아닌가 싶다"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한 사람들은 대개 사무실 배치를 바꾸는 일에 비판적이다. 그들은 그것을 그저 컨설턴트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수단으로 본다. 그러나 끊임없는 변화 추구에는 '인식의 경직화'를 막아준다는 놀라운 지혜가 숨어 있다.

Building 20 / Plywood Palace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빌딩 20은 끊임없는 변화의 전형이었다. 철강이 부족하던 2차 세계 대전 무렵 지은 3층짜리 창고만 한 합판 궁전Plywood Palace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철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공간이 부족하자 대학 측은 그곳을 사용하던 소방 당국을 설득해 건물을 그대로 두고 떠나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건물에 호기심을 보인 많은 교수가 자신의 필요에 맞춰 수시로 개조했다. 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벽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팔꿈치로 밀어버리면 그만이다."

또 다른 교수도 말했다.

“바닥에 구멍을 내 새로 수직 공간을 만들고 싶을 때면 그냥 그렇게하면 된다.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야말로 유례없이 편리한 실험용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즉석에서 변형이 가능해 입자 가속기를 설치하기도 했고, 학군단이 입주하기도 했다. 또 피아노 수리 시설이나 세포 배양 실험실로 쓰는 등 온갖 잡다한 용도로 쓰였다. 핵물리학자와 식품 연구원이 서로 가까이에서 일하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이 건물 안에서 언어학자 놈 촘스키는 선구자적 인류 언어 이론을 개발했고 해롤드 에저튼 교수는 고속 사진법을 개발했으며 아마르 보스 교수는 그 유명한 보스 스피커 특허를 냈다. 그뿐 아니라 여기에서 최초의 비디오 게임이 태어났고 많은 첨단 기술 기업도 탄생했다. 덕분에 이 건물은 마법의 인큐베이터로 알려졌다. 환경주의 학자 스튜어트 브랜드는 자신의 저서 《건물은 어떻게 배우는가 How Buildings Learn》에서 이렇게 썼다.

빌딩 20 은 진정한 편의 시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똑똑한 사람들이 왜 냉난방을 포기하고, 복도에 카펫을 깔고, 큰 창문을 내고, 멋진 전망을 확보하고, 최첨단 건축과 기분 좋은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것일까? 내리닫이창과 흥미로운 이웃, 튼튼한 바닥 그리고 자유 때문이다.

임시로 지은 가건물에서 장기간 일하는 건 대개 옵션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사무실을 바꾸거나 방을 리모델링하거나 자유 시간 정책을 수정하거나 팀을 바꾸는 방식으로 변화 문화를 촉진한다. 커피 자판기를 들여놓고, 벽을 파랗게 칠하고, 테이블 풋볼 게임기를 설치하고, 벽을 헐어 탁 트인 공간을 만들고, 회전의자를 갖다 놓는 등 변화를 주는 것이다.

뭐든 돌에 새기듯 고정하지 마라. 지금 잘 통하는 모델도 5년 후에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모델도 절대 영원히 통하지는 않는다. 창의적인 기업은 반복 억제를 피하고 많은 옵션을 만들며 지금 잘 돌아가는 것이 싫증나기 전에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혁신은 틀에 박힌 것을 뒤집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