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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게 사회적 배제는 말 그대로 아플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본문
뇌에게 사회적 배제는 말 그대로 아플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siliconvalleystudent 2022. 11. 27. 23:52우리는 사랑과 실연과 모험과 공포의 세계로 달아나려고 영화관에 간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는 영웅들과 악당들은 한갓 2차원 영사막에 투영된 배우들일뿐이다. 대관절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 덧없는 허상들이 겪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까? 왜 영화는 우리를 울리고 웃기고 한숨짓게 할까?
당신이 배우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당신이 통증을 느낄 때 당신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누가 주삿바늘로 당신의 손을 찌른다고 상상해보라. 그때 일어나는 통증은 뇌 속의 단일한 장소에서 처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건은 여러 뇌 구역들을 활성화하고, 그 구역들 모두가 조화롭게 작동한다. 이 연결망을 일컬어 '통증 매트릭스 pain matrix'라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다. 통증 매트릭스는 우리가 타인들과 연결되는 방식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누군가가 주삿바늘에 찔리는 모습을 당신이 보면, 당신의 통증 매트릭스의 대부분이 활성화된다. 당신이 실제로 찔렸다고 알려주는 구역들은 활성화되지 않지만, 통증에 대한 감정적 경험을 담당하는 구역들은 활성화된다. 다시 말해, 통증을 느끼는 타인을 지켜볼 때 사용되는 뉴런 장치는 스스로 통증을 느낄 때 사용되는 뉴런 장치와 동일하다. 바로 이것이 공감의 토대다.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타인의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타인의 상황에 당신 자신이 처했다면 어떠할지를 당신은 불가항력적으로 시뮬레이션한다. 영화와 소설을 비롯한 이야기들이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하고 인류 문화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이유가 바로 이 같은 우리의 시뮬레이션 능력에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매우 낯선 인물이거나 완전히 꾸며낸 캐릭터라고 해도, 당신은 그의 고통과 황홀을 경험한다. 당신은 그 주인공 속으로 녹아들어가 그의 삶을 살고 그의 입장에 선다. 타인이 고통당하는 것을 볼 때, 당신은 이것이 그 사람 사정이지 내 사정은 아니라고 당신 자신에게 말하려 애쓸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뇌 속 깊숙이 자리 잡은 뉴런들은 당신의 사정과 타인의 사정을 구분할 줄 모른다.
이렇게 타인의 통증을 느끼는 천성적 장치는 우리가 아주 쉽게 타인의 입장에 설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가 애당초 이 장치를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의 관점에서 공감은 유용한 솜씨다. 공감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더 잘 파악함으로써 타인의 다음 행동을 더 잘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감의 정확성은 한계가 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타인에 투사할 뿐이다. 수전 스미스Susan Smith의 예를 보자. 1994년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사는 주부 수전은 한 남자가 자신의 차량을 강탈하여 그녀의 아들들을 그대로 태운 채 달아났다고 경찰에 신고하여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9일 동안, 그녀는 전국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아들들의 구조와 귀환을 바라며 호소했다. 곳곳에서 도움과 지원이 답지했다. 결국, 수전 스미스는 자신이 아이들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모든 사람이 그녀의 차량 강탈 이야기에 빠져들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실감 나는 연기가 평범한 수준에서 예측할 만한 연기의 범위를 훌쩍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 사건의 모든 세부적 진실들은 상당히 또렷하지만, 당시에는 그것들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개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서 타인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들을 흉내 내고 타인들과 연결되고 타인들에게 마음을 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의 뇌는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존할까? 뇌가 타인과의 접촉에 굶주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09년에 평화 활동가 새라 슈드 Sarah Shourd와 동료 두 명은 이라크 북부 산악 지대를 걸어서 여행하는 중이었다. 당시에 그곳은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그들은 현지인들의 추천에 따라 아메드 아와 폭포를 보러 갔다. 불행하게도 그 폭포는 이라크와 이란의 국경에 있었다. 그들은 이란 국경 경비대에 의해 미국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다. 두 남성은 한 감방에 갇혔지만, 새라는 그들과 떨어져 독방에 감금되었다. 그녀는 무려 410일 동안 하루에 30분씩 두 차례만 빼고 모든 시간을 홀로 격리된 채 보냈다.
새라의 말을 들어보자.
독방에 갇히고 몇 주, 몇 달이 흐르면 당신은 동물과 비슷한 상태로 전락한다. 정말이다. 당신은 우리에 갇힌 동물이다. 당신은 대부분의 시간을 서성거리면서 보낸다. 동물과 비슷한 상태는 이윽고 식물과 더 비슷한 상태로 바뀐다. 당신의 정신은 느려지기 시작하고 생각은 반복된다. 당신의 뇌는 맴돌면서 극심한 고통의 원천이 되고 최악의 고문이 된다. 나는 내 삶의 모든 순간을 다시 체험하곤 했다. 그러다가 결국 당신의 기억이 고갈된다. 당신은 모든 기억을 당신 자신에게 이미 여러 번 들려주었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새라의 사회적 결핍은 심한 심리적 고통을 야기했다. 상호작용이 없으면, 뇌는 고통을 겪는다. 많은 나라에서 독방 감금은 불법이다. 왜냐하면 인간적 삶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들 중 하나인 타인들과의 상호작용을 박탈했을 때 어떤 손상이 발생하는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보고 알아챘기 때문이다. 세계와의 접촉에 굶주린 새라 슈드는 금세 환각 상태에 진입했다.
햇빛은 하루의 특정 시간에 특정 각도로 내 창으로 들어왔다. 그러면 내 감방 안의 모든 먼지 입자들이 반짝였다. 나는 그 모든 입자들을 지구에 사는 타인들로 보았다. 그들은 삶의 흐름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충돌했다. 그들은 다 함께 무언가 하고 있었다. 나는 한구석에 갇혀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나는 삶의 흐름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감금된 지 1년 남짓 지난 2010년 9월, 새라는 석방되어 세계와 재회했다. 그 사건의 외상(트라우마)은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새라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쉽게 공황 상태에 빠졌다. 이듬해에 그녀는 도보여행 동료였던 셰인 바우어와 결혼했다. 그녀는 자신과 셰인이 서로를 진정시킬 수 있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그것이 늘 쉽지는 않다고 한다. 두 사람 다 감정적 흉터를 지닌 탓이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er 는 개인이 '존재한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세계 안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해석하자면, 당신 주위의 세계가 당신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자아는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자와 임상의사는 독방에 갇힌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할 수 있지만, 그 상태를 직접 실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신경과학자 나오미 아이젠버거 Naomi Eisenberger가 고안한 실험은 그보다 약간 더 견딜 만한 상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집단에서 배제되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통찰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 두 명과 함께 공을 던져서 주고받는 놀이를 한다고 상상해보라. 놀이 도중에 특정 순간부터 당신은 놀이에서 배제된다. 다른 두 사람이 당신을 제쳐놓고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받는다. 아이젠버거의 실험은 이 단순한 시나리오를 기초로 삼는다. 그녀는 자원한 피험자들에게 간단한 컴퓨터 게임을 시켰다. 그 게임에서 피험자는 다른 플레이어 두 명과 함께 공을 주고받았다. 연구진은 피험자에게 다른 플레이어들도 사람이라고 알려주었지만, 실제로 그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처음에 그 플레이어들은 공정하게 놀이했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그들은 피험자를 배제하고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받았다.
아이젠버거는 피험자를 뇌 스캐너 속에 눕혀놓고 이 게임을 시켰다(이런 실험에 쓰이는 뇌 영상화 기술을 '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법 fMRI'이라고 한다. 4장 참조). 그녀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피험자가 놀이에서 배제하면, 피험자의 통증 매트릭스에 속한 구역들이 활성화되었다. 공을 못 받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일 것 같기도 하지만, 뇌에게 사회적 배제는 말 그대로 아플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왜 배제당하면 아플까? 추측하건대 이것은 사회적 연대가 진화의 관점에서 중요함을 시사하는 단서 중 하나다. 바꿔 말해 배제의 아픔은 우리를 타인들과의 상호작용 및 연대로 이끄는 메커니즘이다. 그 아픔은 우리에게 집단을 구성하라고 촉구한다.
이 사실에서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세계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집단을 이룬다. 우리는 가족, 우정, 노동, 유행, 스포츠 팀, 종교, 문화, 피부색, 언어, 취미, 정치적 연대를 통해 서로 결합한다. 집단에 소속되면 우리는 편안해진다. 이 사실은 인류의 역사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 하나를 제공한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7). 더 브레인 (전대호, 역). 서울: 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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