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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science Book/Neuroscience

차별적 공감

siliconvalleystudent 2022. 11. 29. 13:51

정상적인 사회적 뇌 기능의 붕괴를 실험실에서 연구할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고자 나는 실험을 하나 고안했다.

우리의 첫째 질문은 간단했다. 타인에 대한 당신의 기본적 공감은 그 사람이 당신의 내집단에 속하느냐 아니면 외집단에 속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까?

우리는 피험자들을 스캐너 속에 넣었다. 그들은 스크린으로 여섯 개의 손을 보았다. 컴퓨터는 그 손들 중 하나를 무작위로 선택한다. 그러면 선택된 손이 스크린 중앙에 확대되어 나타나고, 피험자는 면봉이 손을 건드리는 모습, 또는 주삿바늘이 손을 찌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두 광경은 시각 시스템에서 동일한 활동을 유발한다. 그러나 두 광경이 뇌의 나머지 부분에서 일으키는 반응은 사뭇 다르다.

앞서 언급했듯이, 타인이 통증을 느끼는 것을 보면, 관찰자 자신의 통증 매트릭스가 활성화된다. 이것이 공감의 토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토대를 바탕으로 공감에 관한 우리의 질문들을 한 단계 격상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아주 간단한 변화를 가미했다. 즉, 똑같은 손들 각각에 한 단어로 된 표찰을 붙였다. 그 표찰들은 '기독교도', '유대인', '무신론자', '무슬림', '힌 두교도’, ‘사이언톨로지 scientology 교도'였다. 컴퓨터가 손 하나를 무작위로 고르자, 그 손이 스크린 중앙에 확대되어 나타나고 면봉이 그 손을 건드리거나 주삿바늘이 그 손을 찔렀다.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당신의 뇌는 외집단의 일원이 통증을 느끼는 것을 볼 때에도 내집단의 일원을 볼 때만큼 관심을 기울일까?

우리는 상당히 큰 개인차를 발견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피험자의 뇌는 내집단의 일원이 통증을 느끼는 것을 볼 때 더 강한 공감 반응을 나타냈다. 외집단의 일원을 볼 때 나타나는 공감 반응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표찰이 고작 한 단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결과는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 아주 적은 정보만으로도 우리는 상대방의 소속 집단을 확인한다.

통증을 느끼는 타인에 대한 당신 뇌의 선의식적(의식에 선행하는) 반응은 기초적인 범주화에 의해서도 충분히 변화한다. 물론 종교의 편 가르기 경향에 대해서 여러 견해를 내놓을 수 있겠지만, 이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결과는 이것이다. 우리의 실험에서, 무신론자인 피험자들조차도 '무신론자'라는 표찰이 붙은 손의 통증에 더 강하게 반응했다. 다른 표찰이 붙은 손을 볼 때 그들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요컨대 우리의 실험 결과에서 중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당신이 속한 집단이다.

우리의 실험 결과는 사람들이 외집단의 일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폭력이나 집단학살과 같은 것을 이해하려면 한 단계 더 깊이 파고들어 비인간화dehumanization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교의 라사나 해리스 Lasana Harris는 비인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 일련의 실험들을 수행해왔다. 해리스는 뇌의 사회적 연결망, 특히 안쪽앞이마엽 피질(mPFC)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탐색한다. 이 구역은 우리가 타인들과 상호작용하거나 타인들에 대해서 생각할 때 활성화된다. 반면에 우리가 커피 잔과 같은 무생물을 다룰 때는 활성화되지 않는다.

해리스는 자원한 피험자들에게 다양한 사회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노숙자나 마약 중독자의 사진을 말이다. 그는 피험자들이 노숙자를 볼 때 안쪽 앞이마엽피질이 덜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한다. 마치 노숙자가 사람이라기보다 물체에 더 가깝다는 듯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해리스의 표현을 빌리면, 노숙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는 시스템들을 차단함으로써 우리는 그의 구걸을 거리낌 없이 거절할 수 있게 된다. 바꿔 말해 그 노숙자는 비인간화되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의 뇌는 노숙자를 사람이 아니라 물체에 더 가깝게 본다. 행인들이 노숙자를 진지하게 배려할 개연성이 낮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해리스가 설명하듯이 “당신이 어떤 타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으면, 인간에게 적용되는 도덕 규칙들이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비인간화는 집단학살의 핵심 요소다. 나치가 유대인을 인간보다 저급한 무언가로 보았듯이, 구 유고슬라비아의 세르비아인은 무슬림을 그렇게 보았다.

나는 사라예보에 갔을 때 그곳의 중심가를 산책했다. 전쟁 기간에 그 거리는 '저격수 골목’으로 불렸다. 그 주변의 언덕과 건물들 안에 웅크린 저격수들이 수많은 남성과 여성과 아동을 총으로 쏘아 죽였기 때문이다. 그 거리는 전쟁의 공포를 연상시키는 가장 강력한 상징들 중 하나가 되었다. 어떻게 평범한 도시의 거리가 그렇게 된 것일까?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유고슬라비아 전쟁도 신경학적 조작의 한 형태에 의해 부추겨졌다. 수백 년 전부터 실행된 그 효과적인 조작은 다름 아니라 선전 propaganda이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기간에 주요 뉴스 방송사인 '세르비아 라디오 텔레비전'은 세르비아 정부의 통제 아래 왜곡된 뉴스들을 시종일관 진실이라며 보도했다. 그 방송사는 보스니아인 무슬림과 크로아티아인이 인종주의적인 이유로 세르비아인을 공격했다는 허위 보도를 일삼았다.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은 지속적으로 악마화 되었으며, 무슬림을 묘사할 때는 부정적인 언어가 사용되었다. 이런 기괴한 행태가 극에 달하자, 무슬림이 세르비아인 아동들을 사라예보 동물원의 굶주린 사자들에게 먹이로 준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보도되기까지 했다.

집단학살은 오로지 비인간화가 대규모로 일어날 때만 가능하며, 대규모 비인간화를 위한 완벽한 도구는 선전이다. 선전은 타인들을 이해하는 일을 담당하는 뉴런 연결망들을 정확히 파고들어 타인들에 대한 우리의 공감을 약화한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7). 더 브레인 (전대호, 역). 서울: 해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