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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평생 변한다 - 신경가소성 본문

Neuroscience Book/Neuroscience

뇌는 평생 변한다 - 신경가소성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6. 09:00

“어릴 때 악기 하나쯤 배워둘걸 그랬어.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네."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릴 때는 뇌가 대단히 유연하기 때문에 언어든 운동이든 무엇이든 배워도 학습 속도가 빠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동의 뇌가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어린아이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무엇이든 빨리 배워야 한다. 뇌를 보면 이런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린아이의 뇌세포는 다른 뇌세포와 연결을 만드는 능력뿐만 아니라 연결을 잘라내는, 즉 가지치기하는 능력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어른에게서는 절대 불가능한 속도로 일어난다.

 

 

하지만 뇌가 변화하는 능력을 과학 용어로는 신경가소성 neuroplasticity이라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뇌의 가장 중요한 특성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도 유연성이 어린 시절을 절대 따라가지는 못할지언정 완전히 사라지는 법은 없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든 살이 되어서도 그런 유연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성인이 뇌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고, 뇌가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셸 맥Michelle Mack에게 일어났던 일을 살펴보려 한다. 42세의 미국 여성인 맥의 놀라운 인생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뇌의 진정한 능력을 새로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반쪽짜리 뇌를 가진 여자


미셸 맥은 1973년 11월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다. 미셸이 태어나고 불과 몇 주 만에 부모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다. 미셸은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지 못했고, 사지, 특히 오른쪽 팔다리를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부모는 수많은 전문의를 찾아다니며 미셸의 눈을검사하고 뇌성마비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둘 다 문제의 원인이 아니었다. 그녀를 진찰한 신경과 전문의 중 누구도 증상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뇌를 엑스레이 X-ray로 촬영해도 소용없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컴퓨터단층사진Computerized Axial Tomography, 이하 CAT이나 MRI 등과 같은 현대적인 기술이 아직 발달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만 3세가 되어서도 미셸은 여전히 걷지 못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때쯤에 미셸의 주치의는 엑스레이 촬영을 한 번 더 권했다. 미셸이 처음 진찰받았던 이후로 의학 진단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977년에 CAT 촬영을 다시 했는데, 그 결과를 보고 미셸의 부모뿐만 아니라 주치의까지도 함께 충격을 받고 말았다. 미셸 맥은 왼쪽 뇌가 아예 없었다. 반쪽짜리 뇌를 가지고 살았던 것이었다. 미셸이 엄마 배 속에 있는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이 분명했다.

미셸이 태어나기 전에 뇌졸중을 앓았을 가능성이 하나 있었다. 아니면 왼쪽 경동맥이 막혀서 왼쪽 뇌에 피가 흐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미셸의 왼쪽 뇌가 90% 이상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흔히 왼쪽 뇌는 분석과 이성을 담당하는 뇌, 즉 수학적 사고와 언어적 사고가 자리 잡는 뇌고, 오른쪽 뇌는 예술과 창조성을 담당하는 뇌라고 한다. 현재는 이렇게 나누는 것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이분법임을 알게 됐지만, 그래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왼쪽 뇌가 책임지는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미셸이 겪는 여러 장애가 금방 이해된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왼쪽 뇌는 오른쪽 몸의 움직임을 담당하므로(반대쪽도 마찬가지다.) 미셸이 오른쪽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미셸 맥의 초년기 삶이 아니라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이다. 미셸은 결여된 능력들을 빠른 시간안에 성공적으로 발달시켰다. 주치의도 그렇게 조속히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는 감히 기대하지 못했다. 미셸은 걷고 말하고 읽는 법을 배웠고 속도가 조금 느리기는 했으나 다른 면에서도 또래 대부분과 비슷하게 정상적인 발달을 보였다.

요즘 미셸은 여러 면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고, 자기 교구에서 파트타임 일도 하고 있다. 언어 구사 능력은 보통 미셸에게 없는 왼쪽 뇌가 담당하는 기능이지만, 미셸은 이 능력도 대부분 정상이다. 오른쪽 팔다리의 운동 능력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걷는 데는 문제 없다.

검사해보니 미셸은 추상적 사고에 조금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자세한 사항을 기억하는 능력은 정말 경이로운 수준이다. 그 덕에 대단히 특이한 재주가 함께 따라왔다. 미셸은 아무 날짜나 골라서 말하면 그 날짜가 어느 요일인지 즉각적으로 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셸에게 2010년 3월 18일이 무슨 요일이었느냐고 물어보면 거의 즉각적으로 '목요일'이라고 답할 것이다.

미셸의 오른쪽 뇌는 원래 왼쪽 뇌가 처리했어야 할 수많은 과제도 모두 떠맡게 되었다. 과거 연구를 통해 소규모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알려졌지만, 아예 뇌의 절반이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도 뇌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재구축되어 그것을 보상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셸의 오른쪽 뇌는 신경 재배열이 대단히 광범위하게 일어나서 너무 혼잡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 미셸은 시공간 지남력Visuospatial orientation (거리와 공간적 방향을 판단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 시공간 지남력은 일반적으로 오른쪽 뇌가 담당하는 기능이다(미셸의 오른쪽 뇌는 온전하다). 하지만 미셸의 경우는 오른쪽 뇌가 본래 자기가 해야 할 임무뿐만 아니라 왼쪽 뇌가 담당하던 임무까지 이중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유가 없어져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믿는다.

미셸이 특정 날짜의 요일을 즉시 맞힐 수 있게 된 것도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다. 왼쪽 뇌와 오른쪽 뇌는 서로에게 일종의 '얀테의 방패(Jante's Shield, 사람들 사이에서 잘난 척 튀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도록 서로 견제하는 것 - 역자 주)'로 작용한다. 한쪽 뇌가 반대쪽 뇌의 결여된 부분을 그저 보상만 해주지는 않는다. 어떤 분야에서 반대쪽 뇌가 너무 강력해지면 그것을 억눌러서 양쪽 뇌의 능력에 균형을 맞춘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일부 분야에서만 엄청나게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다른 분야에서는 형편없이 뒤처지는 대신, 여러 분야에서 골고루 적당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양쪽 뇌가 서로 소통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이 균형이 깨지면서 어떤 능력은 만개하는 대신 다른 능력에 손상을 입을 때가 많다.

인간 구글


킴 픽Kim Peek에게도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 킴 픽은 영화 <레인맨 Rain Man>에서 배우 더스틴 호프만Dustin Hoffman이 열연한 등장인물 레이먼드 배빗Raymond Babbitt의 모델이었던 실제 인물이다. 픽은 신경섬유 다발인 뇌들보 corpus callosum에 손상을 입은 채로 태어났다. 이는 왼쪽 뇌와 오른쪽 뇌를 잇는 가장 중요한 연결로 여기에 손상이 생긴 킴 픽의 양쪽 뇌는 연결이 불완전했다. 픽은 만 4세가 되어서야 걷는 법을 배웠고, 정신장애가 너무 심해 보여서 의사들은 그를 보호시설에 보내라고 권했다.

 

 

하지만 미셸과 마찬가지로 픽도 책 읽는 법을 배웠고, 책 한 권을 다 읽을 때마다 뒤집어서 꽂아두었다. 픽의 부모는 거꾸로 꽂힌 책들이 집을 채우는 속도에 놀라고 말았다. 그즈음 픽은 어마어마한 기억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람에게서 보고된 것 중 최고의 사례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책의 두 페이지를 동시에 읽을 수 있었다. 왼쪽 눈으로는 왼쪽 페이지를, 오른쪽 눈으로는 오른쪽 페이지를 읽는 것이다. 그는 한 페이지를 읽는 데 10초면 족했다. 책 한권을 한 시간 만에 독파할 수 있었다. 공공도서관에 가서 하루에 책을 여덟 권씩 읽는 것이 취미였다.

기본적으로 그는 자기가 읽은 12,000권 정도의 책에 담긴 모든 내용을 기억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셰익스피어의 글에서 시작해서 영국 왕실에 관한 사실들, 미국의 우편번호 전체 목록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사실, 중요한 사실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가 있었다. '인간 구글Human Google'이라고 불러야 할 사람이 있다면 이 세상에 그건 바로 킴 픽이었다.

미셸 맥과 마찬가지로 킴 픽도 어떤 날짜의 요일을 바로 맞힐 수 있었다. 수십 년 전 과거나 수십 년 후의 미래 날짜까지도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픽에게 다가가서 자기 생일을 말하며 그 날이 무슨 요일이었느냐고 물어봤다. 그러면 픽은 "일요일에 태어나셨네요."라고 즉시 정답을 말했을 뿐 아니라, 이렇게 덧붙였다. "80번째 생일은 금요일에 맞이하시겠어요."

킴 픽의 능력은 너무도 독보적이어서 '킴퓨터Kimputer'와 '메가서번트(Megasavant, savant는 전반적인 지적 능력은 정상인보다 떨어지지만,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비범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 역자 주)'라는 별명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이 순탄치는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대단히 서툴렀고, 옷을 혼자 입기도 힘들었다. 뛰어난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IQ 검사를 하면 평균보다 한참 아래로 나왔다. 신경과학자들이 그에게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 하면 픽은 언제나 너그럽게 자기 시간을 내주었고, 그 덕에 그의 독특한 사례로부터 기억력의 작동방식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는 픽의 엄청난 기억력이 왼쪽 뇌와 오른쪽 뇌 사이에 접촉이 결여되어 서로를 견제하지 못해서 생긴 결과라 믿고 있다.

킴 픽과 미셸 맥 사이에는 차이점뿐만 아니라 유사점도 존재한다. 미셸에게는 뇌 사이의 연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뇌 반쪽이 아예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쪽 뇌가 없는 경우도 양쪽 뇌가 모두 존재하나 그 사이 연결이 잘못된 경우와 똑같은 영향을 미쳐서 어떤 능력이 걷잡을 수 없이 강화되어 뛰어난 능력이 생겨났을 수도 있다.

킴 픽과 미셸 맥은 어쩌면 뇌가 자신을 스스로 재조직하는 능력인 신경가소성을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인지도 모른다. 이제 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이 바뀔 수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셸 맥과 킴 픽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운동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책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에 이렇게 많은 지면을 투자한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뇌가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 다음으로는 이런 질문이 뒤따라온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결국 신체활동과 운동이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도자기보다는 무른 점토와 더 비슷하다


신경가소성 연구를 통해 뇌를 잘 변화하는 뇌로, 즉 신경가소성이 뛰어난 뇌로 만드는 데는 신체활동처럼 효과적인 것이 없다고 밝혀졌다. 특별히 길게 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20분에서 30분 정도의 신체활동이면 신경가소성에 영향을 미치는 데 충분하다.

신체활동을 뇌의 신경가소성으로 바꿔주는 메커니즘 중 하나는 감마아미노뷰티르산Gamma-aminobutyric acid, 이하 GABA이라는 아미노산과 관련이 있다. GABA는 뇌에서 활동을 억제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브레이크처럼 작용한다. 하지만 신체활동이 활발할 때는 GABA의 영향력이 잦아든다. 변화를 차단하는 GABA의 영향력이 운동 때문에 사라지고, 그 덕분에 뇌가 더 유연해져 자신을 재조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도자기보다는 점토에 더 가깝다는 관점에서 뇌를 바라보면 GABA 활성의 변화로 점토가 더 부드러워져 모양 내기가 쉬워지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운동하는 사람의 뇌가 어린아이의 뇌와 더 비슷해지는 것도 같은 이치다.

안데르스 한센. (2018). 움직여라, 당신의 뇌가 젊어진다 (김성훈, 역). 서울: 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