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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에도 기능이 있다 본문

Neuroscience Book/Neuroscience

스트레스에도 기능이 있다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6. 10:00

스트레스에 대처할 때는 먼저 스트레스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우리 몸에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HPA-axis, 이하 HPA축이라는 것이 있다. 이 HPA축은 시상하부 Hypothalamus gland (HPA의 H에 해당)라는 뇌 속 깊숙한 부위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 우리를 향해 비명을 지르거나 해서 뇌가 위협으로 인식되는 무언가를 감지하면 시상하부는 뇌 속의 뇌하수체 Pituitary gland (HPA의 P에 해당)로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뇌하수체는 이 신호에 반응해서 혈류로 호르몬을 보내고 이것이 부신Adrenalgland(HPA의 A에 해당)에 도달한다. 그러면 부신은 다시 여기에 반응해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nisol을 분비한다. 코르티솔은 심장을 더 격렬하고 빨리 뛰게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은 대단히 신속하게 일어난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을 인식한 후에 혈류 속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고 심장박동수가 증가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겨우 1초 정도다.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한 프로젝트를 수많은 청중 앞에서 발표한다고 상상해보자. 심장이 두근거리고 방금 물을 한 잔 들이켰는데도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내가 살짝 손을 떨어서 들고 있는 공책도 같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누가 눈치채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지금 몸에서는 HPA축이 가동을 시작해서 혈중 코르티솔 수치가 올라가는 중이다. 내 몸은 현재 상황을 마치 위협에 직면한 것처럼 해석한다. 사실 청중이 내 목숨을 위협할 일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이 현상들은 수백만 년의 진화 기간 내내 보존된 강력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이다. 지금 상황은 맞서 싸울 것이냐, 달아날 것이냐의 문제가 되었다(fight-or-flight, 투쟁-도피 반응이라고도 한다). 물론 여기서 싸운다는 말은 발표를 잘 마친다는 의미지, 청중의 물리적 공격을 막아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한 가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분명하다. 몸은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면 몸과 뇌 모두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목숨 걸고 싸우거나 달아나려고 준비할 때는 근육에 더 많은 피를 공급해야 하므로 심장이 더 격하고 빠르게 뛴다. 그래서 심장박동수가 증가한다. 뇌는 상황에 더욱 집중하고 아주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만약 청중 중에 누가 기침만 해도 그 소리에 빛의 속도로 반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스트레스에도 기능이 있다. 스트레스는 우리를 더욱 기민하게 하고 집중력도 높여준다. 보통은 이것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반응이 지나치게 격렬해지기도 한다. 집중을 더 잘하게 해주는 대신, 오히려 명료한 생각을 방해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통제력을 잃고 끔찍한 괴로움을 느낀다. 이런 사람들한테서는 HPA축이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

편도체 - 스트레스 촉발자

Amygdala

그러면 조금 뒤로 되짚어가며 스트레스가 실제로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확인해보자. 청중이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경고'는 HPA축이 아니라 그 엔진인 편도체amygdala 에서 온 것이다. 편도체는 아몬드 크기 정도의 뇌 영역으로 측두엽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양쪽 뇌 반구에 하나씩 모두 두 개다. 편도체는 진화 과정에서 계속 보존되었고, 인간과 여러 포유류의 공통 특성이기도 하다. 이 영역이 오랜 시간 계속 살아남은 이유는 다른 종뿐만 아니라 우리 종의 생존에도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빨리 달아날 수 있도록 위험한 상황을 신호로 알려주는 효과적인 경보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생존 가능성이 크게 올라갈 테니까 말이다. 이것이 바로 편도체가 하는 일이다.

편도체는 스트레스 경보 활성화의 생물학적 상호작용에서 특이한 특성을 보인다. 스트레스 기능을 촉발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에 의해 스스로 촉발될 수도 있다. 너무 복잡하게 들리는가? 그 과정은 이렇다. 편도체가 위험 신호를 보내면 코르티솔 수치가 상승하는데, 이렇게 상승한 코르티솔 수치가 다시 편도체를 더욱 활성화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악순환 고리를 그리며 스스로 강해진다.

편도체가 통제 불능 상태로 HPA축을 가동하게 내버려 두면 조만간 아주 제대로 된 공황발작을 경험하게 된다. 공황발작은 그 자체로도 지극히 불쾌한 경험이지만, 비이성적 행동을 유발할 때도 많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선조들이 사바나 초원에서 위협적인 동물과 직면했을 때마다 공황상태에 빠졌다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절박한 위험 앞에서도 냉정한 이성을 유지하고 명료하게 생각하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프로세스다.

우리 몸에는 정신줄을 놓고 공황상태로 빠져들지 않도록 스트레스 반응을 늦춰주는 몇 가지 브레이크 페달이 마련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해마hippocampus다. 해마는 기억 중추의 역할을 하지만, 기억을 만들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정서적으로 과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브레이크 역할도 한다. 해마는 스트레스 반응을 저지하기 때문에 편도체의 스트레스 촉발 기능과 균형을 이룬다. 이 과정은 꼭 스트레스 상황이 아니라도 뇌에서 계속 발생한다. 편도체와 해마는 서로를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며 항상 균형을 이룬다. 편도체가 스트레스의 가속 페달을 힘껏 밟고 있는 동안 해마는 브레이크를 힘껏 밟고 있는 셈이다.

불안이 가라앉다


발표 상황으로 되돌아가보자. 이제 발표는 마무리했으니 한숨 돌릴수 있게 되었다. 청중은 내가 긴장하고 있었음을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내면에서는 혼란의 폭풍이 한바탕 휘몰아쳤지만, 아무도 그 낌새조차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스트레스 반응도 줄어든다. 모든 위협이 사라진 듯 보이자 몸과 머리는 경계를 늦춘다. 편도체의 활성이 가라앉고, 코르티솔 수치도 떨어진다. 몸은 무기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선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스트레스 상황이 마무리되는 대로 바로 코르티솔 수치가 떨어진다는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심각한 상황에서는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코르티솔이 유용한 역할을 한다. 맞서 싸우거나 달아나려면 에너지가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진상태로 돌아다니면 좋지 않다. 이 스트레스 호르몬이 너무 많아지면 해마의 뇌세포에 독이 될 수 있다. 해마의 뇌세포는 너무 많은 코르티솔에 노출되면 죽는다. 과학자들은 장기간(여기서는 몇 달이나 몇 년 정도를의미한다.) 코르티솔 수치가 과도하게 높아지면 해마의 크기가 줄어든다고 믿고 있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이는 좋은 소식이 아니다. 기억 장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해마는 뇌의 기억 중추이고, 이 장 시작부분에서 보았던 내 환자처럼 오랜 시간 스트레스 반응이 높아져 있던 사람은 단기 기억력이 나빠지는 경험을 할 때가 많다.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 중에는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 장소를 깜박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경우가 더 많다. 해마는 공간 탐지 spatial navigation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만드는 스트레스


해마의 크기가 줄어들 때 건망증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스트레스 반응을 막는 브레이크가 점점 더 약해진다는 점이다. 스트레스 촉발자인 편도체가 과도하게 일을 하다 보면 해마의 스트레스 브레이크가 닳는다. 그러다가 해마가 더는 편도체의 영향을 견제할 수 없게 되면 스트레스 반응이 자체적인 생명력을 얻기 시작한다.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해마는 크기가 줄어들면서 스트레스 과정을 늦추는 능력을 점점 상실하지만, 가속 페달 역할을 하는 편도체는 점점 속도를 올린다.

이 시점에 들어서면 스트레스 자체가 더욱 큰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에 빠진다. 만성 스트레스가 필요 이상으로 지속할 때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말 그대로 뇌의 고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뇌를 검사하면 해마가 실제로 평균보다 살짝 작아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코르티솔 때문에 해마가 서서히 침식된 탓일 것이다.

안데르스 한센. (2018). 움직여라, 당신의 뇌가 젊어진다 (김성훈, 역). 서울: 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