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roscience Study
왜 완벽한 스타일을 찾지 못하는가? 본문
인간이 혁신하고자 할 때 무얼 필요로 하는지 알고 싶다면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을 보라. 스타일 변화는 자전거부터 대형 경기장까지 우리가만들어내는 모든 인공물에서 그대로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이런 의문을 낳는다. 어째서 헤어스타일과 자전거, 경기장은 계속 변화하는 걸까? 왜 우리는 완벽한 해결책을 찾아 그것을 고수하지 못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혁신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혁신은 '옳은' 것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은 무엇인가'의 문제다. 인간은 늘 미래 지향적인데 거기에는 절대 정착점이 없다. 그처럼 인간의 뇌가 쉼 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은 언제 어느 때든 적어도 100만 명이 편안한 좌석에 앉아 지구 위를 몇천 킬로미터씩 날아다닌다. 민간 항공의 성공은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다.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지만 한때 하늘로 여행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드물고 위험한 모험이었다. 물론 지금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일이다. 우리는 몽유병자처럼 힘없이 비행기에 오르지만 맛있는 식사와 뒤로 젖혀지는 편안한 좌석, 스트리밍 영화에서 충족감을 느끼며 서서히 활기를 되찾는다.
신기술이 등장하면 가장 최신 기술이 빛을 잃는데 이런 현상은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화가 마르셀 뒤샹은 이렇게 썼다.
50년 후에는 전혀 다른 세대, 전혀 다른 비평 언어,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이 등장하리라고 본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생존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 어떤 그림도 실제 수명이 30년에서 40년을 넘지 못하며 (···) 30~40년 후면 그 그림은 죽고 내뿜던 빛이든 주변 아우라든 전부 사라진다. 그 뒤 완전히 잊히거나 미술사의 지옥 불길 속에 내던져진다!
세월이 흐르면 한때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위대한 작품도 인정받는 작품에서 잊힌 작품 사이 어디쯤 놓인다. 즉 가장 진보적이던 것이 평범해지고 가장 예리하던 것도 무뎌진다.
기업들은 뛰어난 계획을 세워 새로운 것이 평범해지는 현상에 일조한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몇 년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꾸라는, 이를테면 사무실 칸막이로 사생활을 보장해주는 자리 배치 대신 서로가 잘 보이는 개방형 자리 배치로 바꾸라고 조언하는 컨설턴트에게 막대한 돈을 쓴다. 나중에 알겠지만 이러한 문제에 정답은 없으며 중요한 것은 변화 그 자체다. 그렇다고 컨설턴트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런 조언의 세세한 면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이러저러한 특정 해결책이 아닌 변화 그 자체다.
인간은 어째서 주변의 모든 것에 그토록 신속히 적응하는 걸까? 바로 '반복 억제'라고 알려진 현상 때문이다. 당신의 뇌가 무언가에 익숙해질수록 그걸 볼 때마다 뇌가 보이는 반응은 점점 줄어든다. 예를 들어 당신이 우연히 새로 등장한 자율 주행 자동차를 보았다고 가정해보자. 그걸 처음 볼 때 당신의 뇌는 크게 반응한다. 뇌가 그 새로운 것을 흡수해 등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자율 주행 자동차를 두 번째로 볼 때 뇌는 조금 덜한 반응을 보인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므로 관심도 그리 크지 않다. 세 번째 볼 때는 다시 반응이 줄어들고 네 번째 볼 때는 반응이 훨씬 더 줄어든다.
무언가에 익숙해질수록 우리가 그것에 쓰는 신경 에너지는 계속 줄어든다. 새로운 직장에 처음 차를 몰고 갈 때 왠지 시간이 더 걸리는 듯한 느낌도 이 때문이다. 두 번째 날은 좀 더 짧게 느껴진다. 그렇게 여러 날이 흐르면 출근하는 데 거의 시간이 걸리지 않는 듯하다. 세상 역시 익숙해질수록 점점 희미해지며 오늘의 전경이 나중에는 배경으로 바뀐다.
왜 그럴까? 인간이 자기 몸속에 만들어둔 에너지 저장실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다. 세상사를 헤쳐 가는 것은 많은 지력을 동원하고 사용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즉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한다. 이때 예측을 잘하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만일 식용 벌레가 특정 형태 바위 밑에서 산다는 것을 알 경우 일일이 모든 바위를 들추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예측을 잘할수록 그만큼 에너지를 더 절약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더 자신 있게 예측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행동하도록 해주는 것이 반복이다.
이처럼 예측 가능성에는 뭔가 매력적이고 유용한 면이 있다. 한데 만약 우리 뇌가 세상을 예측 가능한 곳으로 만들고자 온갖 노력을 하는 것이라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TV를 24시간 내내 예측 가능하도록 리드미컬한 신호음을 내보내는 장치로 바꾸지 않는 것일까?
그 답은 이렇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해 놀랄 만한 뜻밖의 일이 없어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잘 이해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덜 생각한다. 한마디로 익숙함은 무관심을 낳는다. 반복 억제가 일어나 관심이 줄어드는 탓이다. 결혼 생활에 끊임없이 새롭고 신선한 자극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웃긴 농담도 자꾸 들으면 전혀 웃기지 않는 것, 아무리 축구를 좋아해도 똑같은 경기를 반복해서 보면 재미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반복은 일종의 안도감을 주지만 뇌는 자신의 세상 모델 속에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을 집어넣으려 한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뇌는 스스로 업데이트하길 좋아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목말라한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코미디 배우 빌 머레이가 연기한 일기 예보관은 본의 아니게 어떤 하루를 반복해서 살아간다. 끝없는 무한 반복의 틀에 갇힌 그는 마침내 똑같은 날을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에 반기를 든다. 달라진 그는 프랑스어를 배우고 피아노 연주의 거장이 되고 이웃과 친하게 지내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대변인으로 거듭난다.
왜 우리는 그런 주인공에게 열광하는 걸까? 반복되는 일이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100%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것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동 조종 상태를 기피하고 그 덕에 우리의 경험에 늘 깨어있다. 사실 보상에 관여하는 신경 전달 물질계는 뜻밖의 놀라움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측 가능한 시간에 주기적으로 어떤 보상이 주어질 경우 예측 불가능한 시간에 멋대로 같은 보상이 주어질 때보다 뇌 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훨씬 약하다. 즉 뜻밖의 놀라움이 더 큰 기쁨을 준다.
이는 유머가 효과를 발휘하는 방식을 봐도 알 수 있다. 유머에서는 늘 두 남자가 아니라 셋이 술집에 들어온다. 왜 그럴까? 첫 번째 남자는 이것저것 막 내놓고 두 번째 남자는 어떤 패턴을 만든다. 그러면 십중팔구 세 번째 남자가 뇌의 예측에서 벗어나 그 패턴을 깨부순다. 이처럼 유머는 예측이나 기대를 저버리는 데서 생겨난다. 만일 당신이 그 유머를 로봇에게 들려준다면 로봇은 세 남자의 말을 하나하나 듣기만 할 뿐 유머를 재미있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결정적인 대목에서 말이나 행동으로 그 예측을 깨버리는 데 유머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광고주는 계속해서 우리의 관심을 끌려면 끊임없는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광고는 우리를 특정 브랜드의 세제나 감자칩, 향수로 슬금슬금 끌어당기지만 광고가 계속 새로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리고 광고 효과는 사라진다.
반복 회피는 인류 문화의 근원이다. 흔히 듣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마크 트웨인이 말했듯 “역사는 기껏해야 각운만 맞을 뿐”이다. 이는 서로 다른 시기에 비슷한 것을 내놓긴 해도 세세한 면은 같지 않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진화한다. 결국 혁신은 필수고 인간은 새로운 걸 요구한다.
균형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뇌는 한편으론 세상을 예측해 에너지를 절약하려 하지만, 또 한편으론 뜻밖의 놀라움이라는 짜릿함을 추구한다. 우리는 무한 반복을 원하지도 않고 늘 놀라며 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당신은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사랑의 블랙홀>에서처럼 하루가 반복되길 바라지도 않고, 갑자기 중력이 뒤바뀌어 당신이 천장에 붙어 있는 걸 발견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이미 아는 것을 이용하는 것과 모르는 것을 탐구하는 것 사이에는 절충점이 존재한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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