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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science Book/Creativity

익숙함과 낯섦 사이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13. 09:00

뇌는 아는 지식을 이용하는 것과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으려 한다. 이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어떤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을지 결정한다고 해보자. 항상 가던 식당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식당에 가볼 것인가? 항상 가던 식당을 찾아가는 것은 예전의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이용하는 행동이다. 반면 알지 못하는 음식의 심연에 뛰어든다면 이는 시도해보지 않은 옵션을 모색하는 일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동물은 중간 어디쯤을 절충점으로 삼는다. 만일 붉은 바위 밑에는 유충이 있고 푸른 바위 밑에는 유충이 없음을 경험으로 알았다면 그 지식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떤 날은 가뭄이나 화재, 유충을 찾아다니는 다른 동물 때문에 붉은 바위 밑에서 유충을 찾지못할 수도 있다. 세상 법칙은 영원히 지속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동물은 알고 있는 사실(붉은 바위 밑에는 유충이 있다)을 이용하되, 그 사실과 새로 발견한 사실 (푸른 바위 밑에도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어떤 동물은 붉은 바위 밑을 뒤지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모든 시간을 거기에 쓰지는 않는다. 과거에 몇 차례 시도했다 실패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른 바위 밑을 뒤지는 데 시간을 좀 쓰는것이다. 그런 시도는 계속 이어진다. 먹을 것이 어디에서 나올지 전혀 알 수 없으므로 다음에는 누런 바위 밑이나 나무둥치 또는 강에서 먹을 것을 찾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동물의 왕국 안에서는 힘들게 얻은 지식과 새로운 시도 사이에 균형이 이뤄지고 있다.

수백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뇌는 융통성과 엄격성 사이의 균형을 맞춘 탐구·이용 절충점을 찾아왔다. 우리는 세상이 예측 가능하길 원하면서도 지나치게 예측이 가능한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헤어스타일은 적정 반응이 끝나는 지점까지 이르지 않는다. 이는 자전거나 경기장, 글꼴font, 문학, 패션, 영화, 주방,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창조물은 이전에 나온 것과 대체로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모두 변화한 것이다. 지나치게 예측 가능하면 사람들은 관심을 거둬들이고 뜻밖의 놀라움이 너무 크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어지는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창의력은 그러한 긴장감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다.

 

목재 책장의 모습을 닮은 전자책 뷰어 '아이북스'의 초기 디자인

 

탐구 · 이용 절충점은 세상에 왜 그토록 기능과 무관하게 이전에 나온 디자인을 모방한 것을 뜻하는 스큐어모프 skeuomorph 가 많은지 그 이유도 설명해준다.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패드의 전자책 뷰어는 목재 책장 모양이었는데, 프로그래머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했을 때 페이지가 넘어가게 만들려고 애썼다. 왜 간단히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책을 재정립하려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소비자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이미 나온 책과 연관되길 원했다.

 

디지털크라운이 달려 있는 애플워치

 

한 기술에서 다음 기술로 넘어갈 때 우리는 그 기술이 과거의 기술과 연결되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왔음을 분명히 한다. 애플워치에서 동그랗고 작은 버튼처럼 생긴 입력 장치인 디지털크라운은 아날로그 시계의 용두 역할을 한다.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는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묘하게 익숙한' 느낌을 주기 위해 버튼을 시계 중앙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에 두었다고 말했다. 만일 중앙에 두었다면 사용자들은 그 버튼이 아날로그 시계의 용두와 똑같은 기능을 하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버튼을 아예 없앴을 경우 애플워치는 왠지 시계처럼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스큐어모프는 익숙한 것을 모방해 새것의 이질감을 완화해준다.

스마트폰에는 스큐어모프가 잔뜩 들어 있다. 전화할 때는 오래전 기술 세계에서 도태한 송수화기가 달린 구식 전화기 아이콘을 건드린다. 또 디지털카메라에는 기계적인 셔터가 없지만 스마트폰의 카메라 아이콘을 누르면 파일이 작동하면서 셔터 소리가 난다. 스마트폰의 모든 아이콘은 드래그해 쓰레기통에 넣는다. 플로피 디스크는 태곳적 동물 마스토돈처럼 사라진 지 오래지만 파일을 저장할 때는 플로피 디스크 이미지를 클릭한다. 온라인에서 무언가를 구매할 경우 그걸 '쇼핑 카트'에 집어넣는다. 이 모든 것은 과거에서 현재로의 자연스런 변화를 가능하게 해준다. 가장 현대적인 기술조차 탯줄로 그 역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탐구 · 이용 절충점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람쥐가 여러 세대 동안 서로 다른 덤불 속만 뒤지는 동안 인간은 기술로 지구 전체를 접수했다. 결국 인간의 뇌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인데 대체 그게 뭘까?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