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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기: 창조의 재료를 만드는 해체 본문

Neuroscience Book/Creativity

쪼개기: 창조의 재료를 만드는 해체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16. 09:00

쪼개기에서는 인간의 몸처럼 완전한 것을 분해하고 그 조각을 조립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Barnett Newman, Broken Obelisk (1963~1969)


미국 화가 바넷 뉴먼은 자신의 작품 <부러진 오벨리스크Broken Obelisk>를 만들기 위해 오벨리스크를 반으로 부러뜨린 뒤 거꾸로 세워놓았다.

 

Pablo Picasso, Guernica (1937)


프랑스 화가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는 평면을 분해해 그림 조각 맞추기 같은 입체파의 관점으로 바꿔놓았다. 자신의 거대한 작품 <게르니카Guernica>에서 피카소는 쪼개기로 전쟁의 공포를 보여주었다. 온전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갈기갈기 찢긴 민간인 동물 병사의 몸통과 다리, 머리는 전쟁의 잔학성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지역을 쪼개는 것은 이동통신 분야에 일대 혁신을 몰고 왔다. 최초의 이동 전화 시스템은 TV나 라디오 방송과 같이 작동했다. 주어진 지역에 있는 하나의 송전탑에서 사방으로 전파를 쏜 것이다. 이때 동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TV를 시청하는가는 문제가 아니었으나 동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동 전화로 통화하느냐는 문제가 되었다. 수십 명만 동시에 통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통화자 수가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렸다. 가령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대에 전화할 경우 통화 중 신호를 받기 십상이었다.

벨 연구소 엔지니어들은 이동 전화 문제를 TV 문제처럼 다루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그들은 단일 통신 가능 지역을 조그만 셀Cell로 쪼갠 뒤 각 셀에 따로 송신탑을 세우는 혁신 전략을 짜냈다. 현대의 셀폰cellphone, 즉 휴대 전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서로 다른 색깔은 서로 다른 주파수를 나타낸다.


이 시스템에서는 서로 다른 여러 동네에서 같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 더 많은 사람이 동시에 통화할 수 있다. 입체파 그림에서는 이어진 것을 칸칸이 쪼갠 것이 한눈에 보인다. 셀폰에도 그런 아이디어가 바탕에 깔려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통화 중단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Frederick Sanger


1950년대 영국 생화학자 프레더릭 생어는 실험실에서 아날로그형 쪼개기로 실험을 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인슐린 분자를 구성하는 아미노산 배열 순서를 규명하려 전력투구했으나 인슐린 분자가 너무 커서 그 일이 쉽지 않았다. 이때 생어는 인슐린 분자를 보다 다루기 쉬운 조각으로 쪼갠 뒤, 짧아진 분자 조각으로 배열 순서를 규명하자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생어의 그림 조각 맞추기식 방법으로 과학자들은 마침내 인슐린 구성 요소의 배열 순서를 규명했다. 그 공로로 생어는 1958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오늘날 그의 기술은 단백질 구조를 밝히는 데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생어는 DNA 분해 방법을 고안했고 이로써 DNA 사슬이 쪼개지는 시기와 방법을 정확히 통제하게 되었다. 원리는 똑같이 DNA의 긴 가닥을 작업이 가능한 정도로 쪼개는 것이었다. 이 단순명료한 방식 덕분에 유전자 배열 순서 규명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또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비롯해 수백 종의 다른 유기물 유전자 배열 순서도 규명할 수 있었다. 그 공로로 생어는 1980년 두 번째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생어는 DNA 가닥을 쪼개 자연의 유전자 암호를 푸는 방식을 만들어낸 셈이다.

 


 

David Hockney, The Crossword Puzzle (1983)


시간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뇌는 시각적인 세계를 작은 조각으로 쪼갤 수 있다. 영국의 팝아티스트 데이비드 호크니는 커다란 타일이 서로 겹치고 부딪치게 해 사진 콜라주 <십자말 풀이 The Crossword Puzzle〉를 만들었다.

쪼개기가 어찌나 자연스럽게 다가왔던지 우리는 뭔가를 쓰고 말하는 데 얼마나 많은 쪼개기가 쓰이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가령 영미인은 gymnasium(체육관, 맨몸으로 훈련한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gymnazein'에서 나온 말)을 줄여 gym(덜 진보적인 복장 규정을 뜻하기도 함)이라고 한다. 대화를 좀 더 빨리 진행하기 위해 말을 줄인 사례다. 또 글자와 구절을 생략해 FBI·CIA·WHO·EU·UN 같은 두문자어를 만들거나 face-to-face(대면하다)를 F2F로, overhead(전해 들은 말)를 OH로, bye for now(이만 안녕)를 BFN으로 바꿔 쓴다.

이런 두문자어를 편하게 느끼는 걸 보면 우리 뇌가 축약이나 압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쪼개는 걸 잘한다. 언어에서 일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제법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테면 때론 자동차를 wheels(바퀴들)로, 사람의 수를 headcount(머릿수)로 나타낸다. 정장이 비즈니스맨을, 회색 수염이 나이든 중역을 뜻하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Bruno Catalano, travelers (2005)

 


 

David Fisher, dynamic architecture (건축 예정)

 

축약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프랑스의 항구 도시 마르세유에 있는 브루노 카탈라노의 조각을 생각해보라. 이것은 제유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조각이라 할 수 있다.

 



일단 뇌가 전체를 부분으로 쪼갤 수 있음을 깨달으면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건축가 데이비드 피셔가 주도해 건축 예정인 '다이내믹 아키텍처Dynamic Architecture'는 일반적으로 고정된 단단한 건물 구조를 쪼갠 뒤 회전식 레스토랑처럼 모터를 사용해 건물의 모든 층이 각기 따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 결과 외관이 변화하는 건물이 탄생했다. 이는 각 층이 따로따로 혹은 서로 조화를 이뤄 춤을 추며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끊임없이 변화를 주는 경우다. 사물을 쪼개는 우리의 신경학적 재능 덕분에 한때 하나로 합쳐져 있던 조각을 쪼개게 된 것이다.

다이내믹 아키텍처와 마찬가지로 고전 음악의 위대한 혁신 가운데 하나도 음절을 작은 단위로 쪼갰다. 예를 들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전곡 가운데 '푸가 D장조'를 살펴보자. 다음은 그 주요 주제다.

 


악보를 볼 줄 몰라도 걱정할 것 없다. 요점은 바흐가 1악장 후반부에서 자신의 주제를 둘로 쪼갰다는 사실이다. <평균율>의 앞부분 절반은 버리고 오직 붉은색으로 표시한 마지막 네 음표에만 집중했다. 다음 악절에서 바흐는 이 네 음표의 중복 버전을 13차례나 반복하며 빠르고 아름다운 조각의 모자이크를 만들어냈다.

 


바흐 같은 작곡가는 이러한 쪼개기로 자장가나 발라드 등의 민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연성을 선보였다. 즉 주제 전체가 아닌 일부만 반복함으로써 다양한 주제 조각을 쉽게 압축해 영화 <시민 케인>이나 <록키 4>에서 볼 수 있는 몽타주 효과를 냈다. 그러한 혁신의 힘을 보여주듯 바흐는 자신의 여러 작품에서 특정 주제를 도입한 뒤 그것을 쪼갰다.

 



일부 조각을 생략하고 나머지 조각을 그대로 유지하는 뇌의 능력은 종종 또 다른 기술 혁신을 이뤄낸다. 19세기 후반 농부들은 말을 증기기관으로 대체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최초의 트랙터는 잘 작동하지 않았다. 그 트랙터는 기본적으로 거리 기관차나 다름없었고 기계가 너무 무거워 흙이 눌리고 작물이 다 망가졌다. 동력이 증기에서 가스로 바뀌면서 조금 나아졌으나 트랙터는 여전히 크고 무거웠으며 운전하기도 힘들었다.

 

19세기 중기 트랙터


기계로 밭을 가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그러던 중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발명가 해리 퍼거슨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기존 트랙터에서 불필요한 것을 최대한 덜어낸 뒤 엔진 바로 위에 좌석을 갖다 붙인 것이다. 그의 '검은 트랙터 Black Tractor'는 가볍고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이렇게 전체에서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제거하는 방식으로 현대적인 트랙터의 씨앗이 뿌려졌다.“

 



우리가 유지해야 할 정보는 예상보다 적다. 카네기멜론 대학교 마뉴엘라 벨로소 박사 팀이 건물 통로를 돌아다니며 심부름을 하는 로봇 코봇CoBot을 개발했을 때도 그랬다. 그 팀은 코봇에 센서를 장착해 앞 공간을 3차원 렌더링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려다 로봇에 탑재한 프로세서에 과부하가 걸렸고 코봇은 가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결국 벨로소 박사 팀은 코봇이 벽을 탐지하기 위해 전 지역을 분석할 필요는 없으며 단지 같은 벽면의 세 지점만 분석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코봇의 센서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기록하지만 그들은 그 알고리즘을 내장 컴퓨터 처리 능력의 10% 이내로 사용해 극히 일부 데이터만 처리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코봇은 자체 알고리즘으로 벽이라는 평면의 세 지점만 확인하면 자신이 장애물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코봇은 자신의 센서가 기록하는 모든 것을 ‘볼’ 필요는 없다는 점을 활용했다. 코봇이 보는 건 스케치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그 정도 그림이면 장애물에 부딪히는 걸 피하는 데 충분하다. 코봇은 시야가 제한적이라 건물 안에서는 완벽하게 작동해도 탁 트인 야외에서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이 용감무쌍한 로봇은 그간 수백 명의 방문객을 벨로소 박사의 사무실까지 안내했는데 그 모든 것은 풍경 전체를 구성 요소로 쪼갰기 때문이다.

 



전체를 쪼개 일부분을 버리는 기법으로 새로운 뇌 연구 방법도 등장했다. 인간의 뇌에는 복잡한 회로가 있는데 그것이 뇌 깊은 곳에 위치해 볼 수 없는 탓에 뇌 조직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은 오랜 세월 발목이 잡혀 있었다. 과학자들은 대개 그 문제를 뇌를 얇게 나누기, 즉 일종의 쪼개기로 해결했다. 이는 얇게 나눈 뇌 조각 이미지를 만든 뒤 디지털 시뮬레이션으로 그것을 다시 힘겹게 온전한 뇌로 재조합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뇌를 나누는 과정에서 워낙 많은 신경 연결이 손상되는 탓에 컴퓨터 모델은 기껏해야 근사치일 뿐이었다.

 

CLARITY 기법으로 살펴본 쥐의 해마


이후 신경과학자 칼 다이서로스와 정광훈 교수가 이끄는 팀이 그 방법을 대체할 해결책을 찾아냈다. 지질이라 불리는 지방 분자는 뇌 결합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빛을 분산하는 역할도 한다. 과학자들은 죽은 쥐의 뇌에서 지질만 제거하고 뇌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지질을 제거하면 쥐의 회색질이 투명해진다. 코리 아르칸젤의 설치 미술품 <슈퍼 마리오 구름들>처럼 과학자들이 고안한 '클래리티 CLARITY 기법'은 원래의 뇌에서 일부만 제거할 뿐 그 공백을 메우지는 않는다. 그 공백 덕분에 신경과학자들은 예전에 불가능했던 뉴런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쪼개기로 무언가 단단하거나 이어진 것을 다루기 쉬운 조각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세계를 조각낸 뒤 재건하거나 개조한다.

휘기와 마찬가지로 쪼개기도 대개 한 가지 원천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어떤 이미지를 픽실레이션 기법으로 바꾸거나 건물의 각 층이 빙빙 돌게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만일 한 가지 이상의 자원에 의존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많은 창의적인 혁신은 예상을 뛰어넘는 결합의 결과였다. 초밥 피자와 선상 가옥, 빨래방 술집 또는 시인 메리앤 무어가사자의 갈기를 '사나운 국화꽃 머리'로 묘사한 것 등이 좋은 사례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