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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science Book/Creativity

예술은 더 나은 혁신가를 만든다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25. 09:00

창의력은 인류 발전 과정의 원동력이지만 극히 소수만 자신의 창의력을 최대로 이끌어낼 기회를 얻는다. 그중에서도 예술 분야만큼 창의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도 없다. 부유한 대학 학생들은 음악과 무용, 시각 미술, 연극 등을 배우는 경우가 많지만 가난한 대학은 예술 교육을 자원 낭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2011년 미국 국립 예술 기금은 대졸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학창 시절 어떤 형태로든 예술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소수 집단 출신 학생 4명 중 3명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젊은 학생이 창의적인 사고를 하려면 예술이 필요하다. 예술이 그 공개적인 특성 덕분에 혁신의 기본 툴을 가르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에 사용한 소형화 전략은 미국인 발명가 에드윈 랜드의 자동차 앞 유리 섬광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쓰였다. 또한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에 나오는 연속적인 영역 해체는 휴대 전화 송신탑에 반영했고, 화가 프리다 칼로의 상처 입은 사슴(그녀의 얼굴을 사슴 몸에 갖다 붙임)에서 볼 수 있는 '섞기'는 유전자를 조작한 거미염소에 그대로 나타났다.

창의적인 사고방식의 모든 측면은 예술로 가르칠 수 있다. 말하자면 예술은 휘기, 쪼개기, 섞기를 가르치는 신병 훈련소다. 그러나 학교 예산이 빠듯할 경우 관리자는 냉혹한 경제 원칙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16세기 나폴리와 달리 예술은 좋은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며 예술 예산을 삭감하는 탓이다.

그렇지만 과학에 집중하는 학교에서도 예술 교육이 경제적 측면에서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다. 자동차를 처음 발명했을 때 많은 사람이 창의력을 자동차가 달리도록 하는 데 투자했다. 그러다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자동차를 구입하자 더 이상 엔지니어링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사랑받는 자동차를 만들려면 멋진 디자인이 필수였다. 오늘날 대시보드와 시트, 섀시 등은 후드 밑에 숨은 기계장치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이와 유사하게 휴대 전화도 처음에는 극소수만 사용했다. 그 시절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어설펐으나 기술 혁신 제품이라는 명목 아래 벽돌같이 투박한 디자인은 무시되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수십억 명이 하루에도 수백 차례씩 자신의 휴대 전화를 들여다본다. 그처럼 사용자 기반이 엄청나다 보니 어설픈 인터페이스 제품은 살아남지 못한다. 애플, 노키아, 구글 같은 기업이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어 날렵하고 매끄럽고 깨끗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만들려고 애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육자 존 마에다는 특정 기계가 우리 삶에 깊이 파고들수록 그만큼 더 기능뿐 아니라 스타일도 좋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쓰는 각종 장치는 성능에다 예술적 미도 갖춰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버림받는다. 지금 점점 더 많은 기업이 뛰어난 인터페이스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중이다. 2015년 말 《뉴욕타임스》는 IBM이 1,500명의 산업 디자이너를 채용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사람들에게 어필할 새로운 기계를 디자인하기 위한 예술가 집단을 구축한다는 얘기다.

이제 예술과 기술이 서로 연결되면서 형태와 기능이 함께하고 있다. 몇 년 전 텍사스 A&M 대학교의 공학 교수 로빈 머피는 사람들이 로봇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깨달았다.

로봇은 눈 맞춤을 하지 않는다. 어조에도 변화가 없다. 그런데 로봇이 점점 사람들과 가까워지면서 개인 공간을 침범하고 있다.


로봇이 전복된 자동차나 불타는 건물 안에 갇힌 사람을 구해줄 거라는 믿음을 주려면 기계적 정확성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관심이나 감정적 공감대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로빈 머피는 극장을 인간 감정 연구실로 쓰기로 했다. 그는 연극 강사 에이미 게린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 하늘을 나는 로봇을 집어넣었다. 요정들이 많이 등장하는 무대 위의 숲속에서 로봇은 요정들의 말 없는 조력자 연기를 했다. 머피의 팀은 실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얼굴과 팔다리가 없어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로봇을 사용했다. 또 로봇을 위한 '몸짓 언어'도 개발했다. 로봇은 행복할 때는 공중에서 뱅뱅 돌거나 위아래로 폴짝거렸고 분노할 때는 몸을 아래쪽으로 급격히 젖힌 채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짓궂은 행동을 할 때는 빨리 돌면서 가끔 폴짝거렸다. 로봇은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관객의 머리 위를 날면서 완벽하게 맡은 연기를 해냈다. 극장에서 엔지니어들은 로봇에게 보다 풍부한 표정을 넣어주었고 활기찬 기계를 기술과 예술의 사생아로 바꿔놓았다.

창의적인 예술은 위험 감수와 모험을 촉진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미국 작곡가 모든 펠드먼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삶에서 우리는 불안감을 피하기 위해 온갖 것을 다 하지만 예술에서는 불안감을 추구해야 한다."

학생들은 과학 시간에 실험 방법을 배운다. 한데 그 실험은 대개 예정된 결과를 목표로 한다. 올바른 과정을 밟기만 하면 늘 예측한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다. 예술 시간에도 학생들은 실험 방법을 배우지만 이때는 어떠한 보장도 없다. 해답이 없다 보니 학생들은 건강한 자세로 미개척지를 향해 뛰어든다.

더 나은 예술은 더 나은 엔지니어를 만든다. 그렇지만 예술이 중요한더 깊은 이유는 따로 있다. 예술이 과학 발전을 유도하는 것을 넘어 문화까지 움직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9). 창조하는 뇌 (엄성수, 역). 서울: 쌤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