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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위험한 세계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뇌의 전략이다 본문

Neuroscience Book/Neuroscience

우울증은 위험한 세계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뇌의 전략이다

siliconvalleystudent 2023. 1. 1. 09:00

스트레스가 다 지나간 다음에 찾아오는 우울증


969,516. 나는 곧 내가 잘못 읽었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제대로 읽었다. 스웨덴 보건당국Socialstyrelsen의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2018년 12월 기준 16세 이상 스웨덴인 중 약 100만명이 항우울제를 처방받고 있다고 한다. 이는 성인 10명 중 9명을 웃도는 수치다. 우리는 더 오래 살고, 더 건강하며, 클릭 한 번이면 전 세계의 오락물에 접속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우울해 보인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저는 IT 컨설턴트로 올봄 내내 일 때문에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우리 아들은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학교에 가지를않았고, 그 무렵에 또 아파트를 미처 처분하지 못하고 주택을 사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았죠. 잠을 거의 못 잤고 기분도 너무 안 좋았지만 계속해서 제 할 일을 했습니다. 다행히 여름 들어서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아파트는 팔렸고 아들은 제대로 된 도움을 받았죠. 직장에서도 안정을 찾았습니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휴가에 가족과 함께 한 2주 정도 스페인으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도저히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는데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한바탕 울고 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재미있지가 않았습니다. 모든 게 칠흑처럼 어둡게 느껴졌어요. 제가 유일하게 원했던 건 자는 거였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하루에 14~15시간을 잤죠. 그럼에도 쉰 것 같지가 않았어요. 집에 돌아와서 보건소에 찾아갔습니다. 심전도 검사와 혈액 검사를 하고 진단을 받았죠. 번아웃이라는 거예요. 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트레스는 다 지나갔는데 말이죠! 왜 모든 게 다 차분해진 지금에 와서야 그런 거죠?

 

 

이 환자가 빠진 우울증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비논리적으로 보인다. 불안은 살아남도록 도움을 주었으니 쉽게 이해가 되지만, 우울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도망치려 하고 잠도 잘 못 자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며 섹스에 대한 흥미도 잃는다. 이 모든 증상은 생존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확률을 낮춘다. 그리고 왜 스트레스 시기가 지난 다음에 우울증이 자주 발생할까?

우리 뇌가 회피를 좋아하는 이유


우울증에 걸리는 가장 일반적인 원인은 장기적인 스트레스다. 우리는 인생의 퍼즐을 맞추기 어려울 때 자주 스트레스를 받지만, 우리 선조들은 육식동물이나 자신을 때려죽이려는 다른 사람들, 굶주림, 감염병 등을 맞닥뜨렸을 때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을 활성화시켰다. 지금의 우리처럼 터질 듯한 메일함이나 수리로 엉망이 된 욕실 때문이 아니다. 만약 오랫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다면, 이 사람은 위험으로 가득찬 세계에 놓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은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다.

 


뇌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곳곳에 위험이 산재해 있다고 해석하며, 몸을 사리고 이불을 머리에 뒤집어쓰는 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뇌가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감정이다! 뇌는 우리의 기분을 통해 주변 환경이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고 판단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라고 조종한다. 우울감을 느끼게 하여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만약 뇌가 오늘날의 세계에 완벽하게 적응했더라면 장기적인 스트레스는 지금의 세계에 좀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 예로 든 내 환자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요인들은 머리 위로 이불을 뒤집어쓴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 그런데 뇌는 이러한 논리를 무시하고 도망치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뇌가 오늘날의 세계에 맞춰 발달하지 못한 탓이다. 대신 회피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왜냐하면 뇌는 스트레스를 세계가 위험하다는 신호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대부분의 시기 동안 유효했던 스트레스의 의미다.

'그건 그냥 추측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올바르게 추론한 것이다.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진화적인 해설을 가져다 붙일 때는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우울증이 위험한 세계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뇌의 전략일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몇 가지 실마리가 있다. 이러한 실마리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면역 체계다.

우울증,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뇌의 전략


유전자가 우울감을 느끼는 데 영향을 미치지만, 단 하나의 '우울증 유전자'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수백 개의 다양한 유전자가 조금씩 영향을 미칠 뿐이다. 유전자는 우울증에 걸릴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우울증에 빠지도록 어느 정도 취약하게 만든다. 여기에 어떤 유전자들이 관여하는지 연구들이 진행되었고 놀라운 결과를 얻어냈다. 우울증 위험을 키우는 여러 유전자가 면역 체계를 활성화시키는 데도 관여하고 있었다. 우울증과 신체 면역 체계의 예기치 못한 유전적인 연결고리는 우울증이 질병의 감염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려는 뇌의 방어책이 아닌지 고민하게 했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세균성 감염증에 걸리면 항생제를 투여하면 되고 항생제는 질병 퇴치에 도움이 된다. 페니실린은 1928년에 처음 발견되었는데, 무려 1900년대 초에 미국에서는 채 5세가 되기도 전에 어린아이 3명 중 1명이 사망했다. 이전 세기말 기준 사망 원인은 폐렴, 인플루엔자, 결핵, 설사 순이었다. 모두 감염성 질병이었다. 우리 선조들이 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감염성 질병의 사망자 수가 더욱 많았을 것이다. 사냥에서 부상당한 사람은 출혈뿐만 아니라 상처 감염으로도 사망했을 것이다.

따라서 감염증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 몸은 일련의 다양한 진화 메커니즘을 구축했다고 보는 게 당연하다. 그중 하나가 우리의 효과적인 면역 체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상한 음식을 먹고 느끼는 구역감이다. 소위 '행동 면역 체계behavioral immune system'다. 그 밖의 메커니즘으로는 감염 혹은 부상 위험이 있을 때 몸을 사리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게 우울증과 감염증 간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유전자에는 두 가지 임무가있는 것 같다. 바로 면역 체계를 활성화하는 것과 위험, 부상,감염으로부터 몸을 사리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는 우울감을 느끼게 하여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유전자는 부상당했을 때만이 아니라 부상당할 위험이 있을 때도 활성화된다. 이때 유전자는 면역 체계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에 맞설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킨다. 그러면 부상당할 위험이 있을 때는 어떻게 될까? 그렇다, 세계는 위협으로 가득 차 있다고 경고를 한다! 그럼, 우리 주변에 수많은 위협이 있다는 경고 신호는 어떻게 보낼까? 바로 극도의 스트레스다!

우울한 건 내 잘못이 아니야


앞서 예로 든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은 이후, 휴가 동안 우울증을 경험한 환자의 경우에도 뇌가 위험, 감염, 죽음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 셈이다. 그가 호텔 방에 누워 삶이 절망적이라고 생각할 때, 그의 뇌는 우리의 선조들이 직면했던 것과 같은 일련의 진화적인 문제를 풀어야 했다. 내 환자를 비롯해 우울증에 걸린 모든 이에게 '우울증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발달했을 수 있다'는 말은 얄팍한 위로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환자들이 자신의 감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불안이 위험에서 우리를 구하고 우울증이 감염증과 다툼에서 우리를 지켜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환자들은 '우울한 건 내 잘못이 아니야. 내 뇌는 지금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세계에 맞춰진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


우리는 장기적인 스트레스가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스트레스가 음식, 수면, 기분, 성욕보다 투쟁-도피 반응을 우선시하도록 우리 몸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면장애, 복통, 감염에 대한 민감도 상승, 이갈이, 단기 기억 감퇴 및 초조 등의 형태로 여러 차례 경고음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이런 경고를무시했을까?

 


내가 볼 때 사람들은 이게 경고 신호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증상을 스트레스와 연결 짓지 못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여유가 있었더라면, 이를테면 우울증에 빠질 확률을 낮출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우울증을 비롯해 스트레스와 관련된 문제는 치료보다 예방이 훨씬 쉬우며, 따라서 스트레스 증상은 신이 선물한 경고 깃발인 셈이다. 스트레스의 실체가 무엇인지, 스트레스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해하면 너무 늦기 전에 그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라는 말이 항상 유효한 것은 아니다


우울증 위험을 높이는 유전자 중 하나는 뇌에서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또한 스트레스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인위적으로 이 유전자를 제거한 쥐는 스트레스를 좀 더 잘 견뎌냈다. 애초에 이런 유전자를 왜 만들어냈는지, 진화 과정에서 왜 사라지지 않았는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가장 강하고 현명하고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이 항상 살아남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위험과 갈등을 피하고 감염증을 극복하고 음식이 부족한 세상에서 굶어 죽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우울과 불안에 사로잡히는 중요한 이유는 이것들이 우리의 생존을 도와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감정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불안과 우울감이 생존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신체의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이 목숨을 위협하는 세계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발달했는지에 대해 전반적으로 그림이 그려졌기를 바란다.

안데르스 한센. (2020). 인스타 브레인 (김아영, 역). 서울: 동양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