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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science Book/Neuroscience

뇌는 지름길을 사랑한다

siliconvalleystudent 2023. 1. 2. 10:00

집중력과 장기 기억 형성의 상관관계


우리가 뭔가를 배울 때, 그러니까 새로운 기억을 만들려면 뇌세포 간의 연결고리가 바뀌어야 한다. 잠시만 기억하면 되는 단기 기억을 위해서는 뇌가 여러 뇌세포 간에 이미 존재하는 연결고리를 강화하기만 하면 된다. 그에 비해 수개월, 수년 혹은 평생 기억하는 장기 기억을 위해서는 좀 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에는 뇌가 뇌세포 사이에 전혀 새로운 연결고리를 생성해야 한다. 기억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려면 새로운 단백질로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단백질만으로는 부족하다. 뇌는 새로 만들어진 연결고리를 통해 신호를 여러 차례 보내어 이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기억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뇌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이는 또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문 용어로 '강화consolidation'라고 부르는 새로운 장기 기억 형성은 뇌의 활동 중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과정 중 하나다. 이는 특히 자는 동안에 이뤄지는데, 애초에 우리가 잠을 자는 게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 강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첫 번째 단계는 우리가 뭔가에 집중하면서 뇌에 "이게 중요해"라고 에너지를 쏟을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장기 기억이 형성된다. 만약 여기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어제 퇴근 후 집에 와서 열쇠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은 집중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뇌는 중요하다는 신호를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열쇠를 둔 장소를 기억하지 않았고, 다음 날 아침에 열쇠를 찾아서 집 안 곳곳을 들쑤시게 되는 것이다.

시끄러운 방에서 시험 준비를 하려고 할 때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당연히 집중하기가 어렵다 보니, 뇌는 "이게 중요해"라는 신호를 전혀 받지 못해서 읽은 내용을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는 간단히 말하자면 기억 속에 담아둔 것을 빼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억으로 자리 잡으려면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음 단계는 작업 기억에 정보를 담아두는 것이다. 우선은 이렇게 해야 뇌는 강화를 통해 장기 기억으로 저장할 수 있다. 우리가 인스타그램, 문자, 트위터, 메일, 뉴스 속보 및 페이스북 사이를 오갈 때처럼 뇌에 끊임없이 뭔가를 쏟아부으면, 입력된 내용을 기억으로 변환하는 데 방해를 받게 된다. 그리고 기억으로 변환되는 과정 자체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방해를 받을 수 있다.

뭔가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뇌가 그것에 초점을 맞출 시간이 불충분할 때 기억에 방해가 되지만, 정보가 너무 많아도 과부하에 걸릴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작업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TV를 켜둔 상태에서 공부를 하려는데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면 뇌는 이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데 힘을 쏟아부어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뇌는 새로운 장기 기억을 형성할 시간이 없어지고, 결국 뭔가를 읽었으나 배운 것이 없게 된다.

우리는 집중을 방해하는 다양한 디지털 방해물들을 건너뛰면서 효과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자신을 속이고 있다. 그저 수박 겉핥기일 뿐 정보가 기억으로 흡수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는 '원동력'은 우리가 이러한 상태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야 도파민이 분비되니 말이다.

우리의 디지털 (나쁜) 습관이 장기 기억 형성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책의 한 장을 각자의 속도에 따라 읽게 한 뒤, 읽은 내용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일부는 책을 읽는 동안 휴대전화로 문자를 주고받아야 했다. 문자를 주고받다 보니 시간이 걸렸고 당연히 책을 읽는 데도 더 오래 걸렸다. 실험 결과, 모든 학생이 책의 내용을 비슷하게 잘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문자를 주고받은 학생들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문자를 읽고 답장을 보내는 시간을 빼더라도 책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집중력을 온전히 회복하여 마지막으로 읽은 부분으로 되돌아가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이다. 이는 뇌에 '전환기'가 있기 때문이다. 메일이나 문자에 답하면서 공부하는 사람은 읽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위험을 안고 있는 셈이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다시 말해서, 직장에서 혹은 시험공부를 하면서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이중으로 기만하는 셈이다. 내용 파악 능력은 떨어지고 동시에 시간도 더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자나 메일이 왔는지 확인하려고 계속 한 눈을 팔기보다는 1시간에 몇 분 정도를 따로 할애하는 게 좋다.

뇌는 지름길을 사랑한다


뇌는 신체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장기다. 성인의 뇌는 전체 에너지의 20%를 사용하며 10대의 경우 대략 30% 정도를 사용한다. 신생아는 무려 전체 에너지의 50%가 뇌로 간다! 지금 우리는 원하는 만큼 칼로리를 채울 수 있지만 석기 시대의 인류는 그러지 못했다. 따라서 뇌는 신체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소모를 줄이면서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즉, 뇌가 지름길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특히 기억에서 그러하며, 기억으로 저장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는 우리의 디지털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에게 다른 사실을 담고 있는 다양한 문장을 들려준 뒤,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이를 컴퓨터에 적도록 했다. 일부에게는 컴퓨터가 정보를 저장할 거라고 알려주었고, 나머지에게는 컴퓨터에 적은 정보가 삭제될 거라고 알려주었다. 모든 문장을 적은 후 기억이 나는 만큼 말해보게 하자, 컴퓨터가 정보를 저장하는 그룹은 삭제되는 그룹보다 기억하는 문장 수가 더 적었다.

뇌는 어차피 컴퓨터에 저장될 텐데 뭐 하러 에너지를 낭비하느냐고 여겼을 것이다. 그다지 놀라운 결과도 아니다. 만약 뇌가 임무를 컴퓨터에 위임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 할 것이다. 정보가 저장된다고 하면 정보 자체보다 저장되는 장소를 기억하는 게 당연히 쉽다. 피실험자들에게 문장 하나를 개별 워드 문서로 만든 뒤 이를 여러 경로에 저장하게 한다면, 이튿날 기억하는 문장은 많지 않아도 문서를 어디에 저장했는지 경로는 기억할 것이다!

사진으로 찍을 건데 굳이 기억할 필요가 있겠어?


정보가 어딘가 다른 곳에 저장될 거라고 믿으면 뇌가 더는 신경을 쓰지 않는데, 이런 현상을 '구글 효과' 혹은 '디지털 기억상실증'이라고 부른다. 뇌는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정보가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를 우선순위로 삼는다. 그러나 구글 효과는 우리가 어떤 것을 기억하기 어렵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그룹에는 미술관에서 예술품의 사진을 찍도록 지시를 하고, 다른 그룹에는 그저 바라보게만 했다. 이튿날 이들에게 일련의 예술품 사진을 보여주고 미술관에서 본 사진을 찾게 했다. 사진 속의 예술품이 실제 미술관에 있는 것과 같은지 아닌지를 기억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사진을 찍지 않은 피실험자들이 예술품을 더 잘 기억해냈다. 사진을 찍은 피실험자들은 그보다 기억력이 떨어졌다. 뇌가 컴퓨터에 저장되는 문장을 기억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찍은 예술품을 기억에 담아두지 않은 것이다. 뇌는 대신 지름길을 택한 셈이다. '사진으로 찍을 건데 굳이 기억할 필요가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휴대전화로 구글이나 위키피디아에 접속만 하면되는데, 왜 뭔가를 배워야 하는 걸까? 단순히 전화번호 정도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모든 지식을 구글로 대체할 수는 없다. 세상 속에서 어울려 살기 위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 정보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지식이 필요하다. 정보가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넘어갈 때 벌어지는 강화는 뇌의 RAM 메모리에서 하드디스크로 단순히 ‘로우 데이터raw data'가 옮겨가는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뇌의 강화 작업은 지식을 구축하기 위해서 정보를 개인적인 경험과 통합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인간에게 지식이란 사실을 줄줄 외워서 읊는 게 아니다. 당신이 아는 가장 현명한 사람이 세세한 내용을 가장 잘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듯이 말이다. 깊이 있게 뭔가를 배우려면 사색과 집중이 필요하다. 하지만 빠른 클릭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사색과 집중을 놓쳐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하루 종일 인터넷 페이지를 넘나들기 바쁜 사람은 뇌에 정보를 소화할 시간을 주지 않는 셈이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를 우리가 좀 더 빨리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라는 뜻에서, '뇌를 위한 자전거'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이따금 컴퓨터를 우리 대신 사고해주는 '뇌를 위한 택시 운전사'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는 분명 편리하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이 뭔가를 배우는 행위만큼은 다른 존재에게 넘기고 싶지 않기도 하다.

안데르스 한센. (2020). 인스타 브레인 (김아영, 역). 서울: 동양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