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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발적 속성으로서의 의식 본문

Neuroscience Book/Neuroscience

창발적 속성으로서의 의식

siliconvalleystudent 2022. 12. 4. 09:00

총합보다 더 큰


1714년,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Leibniz는 물질 혼자서는 절대로 정신을 산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라이프니츠는 독일의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였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그를 “모든 것을 알았던 최후의 인물”로 칭한다. 라이프니츠가 보기에 뇌 조직은 독자적으로 내면의 삶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오늘날 '라이프니츠의 방앗간'으로 불리는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대형 방앗간을 상상해보라. 그 안에서 돌아다니면 당신은 톱니바퀴들과 수직막대들과 수평막대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러나 그 움직임을 근거로 방앗간이 생각한다거나 느낀다거나 지각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일 것이다. 어떻게 방앗간이 사랑에 빠지거나 일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겠는가? 방앗간은 그저 부품들과 부분들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뇌도 마찬가지라고 라이프니츠는 단언했다. 당신이 뇌를 방앗간 크기로 확대해놓고 그 내부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면, 당신은 그저 부품들과 부분들만 볼 것이다. 지각과 명확히 대응하는 것은 없다. 단지 모든 요소가 모든 요소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당신이 모든 상호작용을 기록한다 하더라도, 생각과 느낌과 지각이 깃든 자리는 불분명할 것이다.

뇌를 들여다보면 뉴런, 시냅스, 신경전달물질, 전기 활동이 보인다. 무수한 세포들이 활발하게 소통하는 것이 보인다. 그럼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 당신의 생각들은 어디에 있을까? 당신의 감정들은? 행복감과 남색의 색감은? 당신은 과연 물질만으로 이루어진 존재일 수 있을까? 라이프니츠가 보기에 정신은 역학적 원인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듯했다.

혹시 라이프니츠가 논증을 구성하면서 무언가를 간과했을 수도 있을까? 뇌의 개별 부품들과 부분들을 주목하면서 그는 한가지 묘수를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방앗간 안에서 돌아다닌다는 발상 자체가 의식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으로서 부적절할 가능성이 있다.

창발적 속성으로서의 의식


인간의 의식을 이해하려면, 뇌의 부분들과 부품들을 중심에놓지 말고 이 요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중심에 놓고생각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단순한 부분들이 자신들보다 더 큰 무언가를 발생시킬 수 있는지 보고 싶다면, 멀리갈 필요 없이 가까운 개미집을 살펴보라.

한 집단에 수백만 마리가 함께 사는 잎꾼개미leaf-cutter ant는 먹을거리를 스스로 재배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녀석들은 농사꾼이다. 일부 개미들은 집에서 나와 신선한 식물을 찾아다닌다. 그런 식물을 발견하면, 녀석들은 식물을 큼직한 조각들로 잘라서 집으로 운반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먹지는 않는다. 대신에 더 작은 일개미들이 그 잎 조각들을 더 작게 잘라서 지하의큰 '밭들'에서 키우는 버섯의 비료로 사용한다. 개미들은 버섯을 먹고, 버섯의 포자낭은 다음 농사를 위해 보존한다. (잎꾼개미와 녀석들이 키우는 버섯은 매우 강한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그 버섯은 독자적인 번식력을 잃은 채로 전적으로 잎꾼개미에 의존해서 번식한다.) 이 성공적인 농사 전략에 힘입어 잎꾼개미는 지하에 어마어마한 집을 건설한다. 그 집의 면적은 수백 제곱미터에 달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잎꾼개미는 완벽한 농업 문명에 도달했다.

중요한 대목은 이것이다. 잎꾼개미 집단은 마치 초유기체처럼 대단한 성취들을 이루지만, 개별 잎꾼개미 각각은 아주 단순하게 행동한다. 개체는 국지적인 규칙들을 따를 뿐이다. 여왕개미는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여왕개미가 하향식으로 개미들의 행동을 조율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미 각각은 다른 개미, 애벌레, 침입자, 먹을거리, 쓰레기, 나뭇잎에서 유래한 국지적·화학적 신호들에 반응한다. 각각의 개미는 대단할 것 없는 자동적 단위이며, 그 단위의 반응은 전적으로 국지적 환경과 유전적으로 코드화된 규칙들에 의존한다. 중앙집권적 의사결정이 없음에도, 잎꾼개미 집단이 나타내는 행동은 대단히 수준 높게 보인다. (농사 외에도 잎꾼개미는 집 안에서 모든 입구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를 알아내 그곳에 시체들을 버리는 것과 같은 대단한 성취들을 보여준다. 그 장소를 알아내는 과제는 수준 높은 기하학 문제다.)

여기에서 중요한 교훈은, 집단의 복잡한 행동이 개체들이 가진 복잡성에서 유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별 개미는 자신이 성공적인 농업 문명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모른다. 녀석은 자신의 작고 단순한 프로그램들을 수행할 따름이다.

개미들이 충분히 많이 모이면, 하나의 초유기체가 발생한다. 그 초유기체는 자신의 기초 단위들보다 더 수준 높은 속성들을 가진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창발emergence'이라고 한다. 창발이란 단순한 단위들이 적절하게 상호작용함으로써 더 큰 무언가가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열쇠는 개미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뇌에서도 마찬가지다. 뉴런 하나는 몸에 있는 다른 세포들처럼 그저 특화된 세포일 따름이다. 물론 뉴런은 돌기들을 뻗을 수 있고 전기 신호를 퍼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특별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개별 개미와 마찬가지로 개별 뇌세포는 평생 동안 자신의 국지적 프로그램을 수행할 따름이다. 즉, 자신의 막을 따라 전기 신호를 운반하고 적절한 때에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하고 다른 뇌세포들이 방출한 신경전달물질에 반응할 따름이다. 그것이 전부다. 개별 뉴런은 어둠 속에서 산다. 뉴런 각각은 다른 뉴런들과 함께 이룬 연결망 속에서 단순히 신호들에 반응하면서 평생을 보낸다. 개별 뉴런은 자신이 셰익스피어를 읽는 당신의 눈을 움직이는 일에 참여하는지, 혹은 베토벤을 연주하는 당신의 손을 움직이는 일에 참여하는지 알지 못한다.

애당초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른다. 당신의 목표, 의도, 능력은 이 작은 뉴런들의 존재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이 뉴런들은 자신들이 모여서 이루는 결과를 알아채지 못하는 채로 더 작은 세계에서 산다.

그러나 이 기초적인 뇌세포들이 충분히 많이 모여서 적절하게 상호작용하면, 정신이 발생한다.

당신은 어디에서나 창발적 속성들을 가진 시스템을 발견할수 있다. 비행기를 이루는 쇳조각들 중에 독자적으로 비행 능력을 지닌 조각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 조각들을 옳게 배열하면, 비행 능력이 발생한다. 시스템의 부품들과 부분들은 개별적으로 무척 단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의 상호작용이다. 많은 경우에 부분들은 교체 가능하다.

데이비드 이글먼. (2017). 더 브레인 (전대호, 역). 서울: 해나무.